이동우 시인 / 우산
지난가을, 빗소리가 유달리 시원한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나는 기분이 조금 고양된 느낌이었는데 피부에 와닿는 물기 가득한 공기와 규칙적인 리듬으로 떨어지는 빗소리 때문이었던 듯하다. 비에 섞여 코를 자극하는 잎 냄새와 흙냄새도 한몫했다. 이 기분을 좀 더 실감 나게 즐겨볼까 하여 나는 커다란 우산을 받쳐 들고 우중 산책에 나섰다. 우산에 떨어진 소리들이 커다란 공명음을 만들어 내며 우산 아래에 있는 나를 감쌌다. 비를 맞지 않으면서 비를 보고 듣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곳곳을 누비다가 잠시 쉬려고 한 아파트 산책로에 있는 나무 둥치 옆에 섰다. 간만의 우중 산책으로 한껏 들뜬 마음과 오후의 한가로움을 만끽하고 있던 그때, 강아지 한 마리가 슬금슬금 내 우산 안으로 들어왔다. 시추였다. 녀석의 정리되지 않은 긴 털은 흠뻑 젖었고 비와 함께 땟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리는 비를 내내 맞고 돌아다닌 모양이었다. 심하게 엉킨 털 사이로 비쩍 마른 몸과 살갗이 드러났다. 긴 털이 녀석의 눈을 가리고 있어 앞이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았는데 녀석은 털 사이로 빼꼼히 보이는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느닷없이 나타난 이 불청객에게 나는 일단 비 피할 기회를 허락하기로 했다. 쭈그려 앉아 녀석에게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해주면서 말도 걸어보았다. 너 어디서 왔니? 비는 또 왜 이렇게 맞았어? 집이 어디야? 녀석은 대답 없이 꼬리만 살랑 흔들었다. 강아지와 나는 한참을 그렇게 우산 아래에 함께 머물렀다. 나와 녀석이 차지한 작은 아지트는 어릴 적 우리 집 마당처럼 아늑했다.
어릴 적, 우리 집에선 백구 한 마리를 마당에서 키웠다. 우리는 그 백구를 순이라 불렀다. 당시는 반려견이나 동물 복지 같은 개념이 없던 때였다. 오늘처럼 비가 퍼붓거나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도 순이는 헌 옷가지가 깔린 널빤지로 만든 집에서 사계절을 살았다. 산책은 고사하고 1미터 남짓한 쇠줄에 묶여 지냈다. 밟아 본 적 없는 담장 너머의 세상을 향해 늘 귀를 쫑긋 세우거나 고개를 쳐들고 코를 벌름거리기 일쑤였다. 순이는 온종일 제자리를 빙빙 돌거나 왔다 갔다 했고 밤이면 하늘을 향해 신음하듯 길게 울었는데, 갇혀 지내는 동물들이 흔히 보이는 증세라는 걸 나는 근래에 와서야 알았다. 식구들이 남긴 밥을 먹던 순이는 그저 집을 지키는 개일뿐이었지만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뛸 듯이 기뻐하며 두 발을 치켜세우고 나를 반기는 친구였다. 1미터 남짓한 둥근 세상을 가진 녀석은 가게 일로 집을 비우는 부모님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쏟아지는 비로 골목이 텅 빈 어느 날, 집에 혼자 있던 나는 무료함을 달래려고 우산을 들고 백구 옆으로 갔다. 대나무 비닐우산 아래서 나는 과자 한 봉지를 뜯어 순이와 나눠 먹었다. 내가 손, 하고 말하면 녀석은 앞발을 내밀었고 머리를 쓰다듬으면 배를 뒤집어 보였다. 슬레이트 지붕을 때린 비가 처마 끝에서 작은 물줄기가 되어 흘러내렸다. 그 물줄기가 흙바닥에 있는 작은 도랑으로 떨어지며 우리 쪽으로 물방울을 튀겼다. 우리는 개집 가까이 바투 앉아 체온을 나눴다. 엉성한 개집 지붕은 빗물을 막아내지 못했고 집 안에 깔아놓은 천은 흠뻑 젖어있었다. 순이는 젖은 제집에 들어가지 않았고, 나는 빈 우리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대나무 우산살에 겨우 의지한 파란 비닐은 늦가을 플라타너스 잎처럼 힘이 없었다. 그날 저녁, 내 몸이 펄펄 끓었다. 물 적신 수건을 이마에 정성껏 대주던 엄마는 머리맡에서 나를 걱정했고, 나는 밤새 창밖의 순이를 걱정했다.
날이 이울고, 비는 여전하고, 나는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제 집에 가야 하는데 이 녀석을 어쩐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녀석이 움찔했다. 내게 달려들지도 않고 나를 쳐다보며 제자리걸음 하듯 앞뒤로 천천히 엉거주춤 움직이는 모양새가 꼭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제야 한가롭던 마음에 파문이 일었다. 길을 잃었나? 버려진 건가? 플라타너스 낙엽들과 도로 블록 위를 무심히 긋는 가을비. 투두둑, 거세지는 빗소리에 나뭇잎들이 사방으로 흔들렸다. 집을 나설 때 가벼웠던 마음이 녀석의 무게만큼 무거워졌다. 녀석을 두고 그냥 가버리면 안 될 것 같았다. 꼬리를 흔들며 나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이제 어디로 갈 거냐고 묻는 듯했다. 나는 녀석을 데려다 키울 수 없는 형편이 아니었다. 또 녀석의 주인이 애타게 찾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우선 길옆 편의점에서 애견 간식을 사 녀석에게 먹였다. 그러고 나서 근처 동물병원에 녀석을 데리고 갔다.
내가 데리고 간 강아지의 행색을 보고 인상을 찌푸린 간호사에 비하면 수의사는 비교적 차분하고 친절했다. 안경 너머 눈빛에서 한 분야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 얼굴빛에 나는 일단 안도했다. 진료대에 강아지를 올려놓고 이리저리 살피던 수의사는 내게 몇 가지를 묻더니 녀석이 아무래도 유기된 것 같다고 했다. 내외장형 인식표가 없는 것도 그렇고 청결 상태나 전반적인 건강 상태로 미루어 버려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내 얼굴을 살피며 제대로 치료하려면 병원비도, 시간도 많이 들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수의사의 이런저런 설명을 듣자니 마음이 복잡했다. 그러는 와중에 손님들이 계속 들어왔다. 한 손님이 데리고 온 새하얀 몰티즈가 주인 손에서 벗어나 내 발치에 와서 냄새를 맡고 재롱을 피웠다. 진료대 위 녀석과 확연히 비교되었다. 어쩌지 못하고 엉거주춤 망설이듯 서 있는 나를 본 의사가 “그럼......” 하고 운을 뗐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그 말을 잡아 “그럼 혹시, 주인이 찾고 있을지도 모르니, 우선 목욕시키고 당장 필요한 치료만이라도 해서 돌봐 주세요”라고 말했다. ‘주인’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말하면서 내가 이 강아지의 보호자가 아님을 그에게 재차 확인시키고는 목욕비와 간단한 치료비를 지불했다. 그리곤 녀석의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인사도 하지 못하고 나는 서둘러 병원을 나왔다. 복잡한 생각과 마음의 짐은 내가 낸 병원비가 덜어주길 바라면서......, 비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사이 낙엽이 더 쌓인 것 같았고, 계절은 한층 깊어진 것 같았다.
몇 주 후, 아파트 산책로 입구에서 우연히 그 동물 병원 수의사를 만났다. 나는 다소 과장되게 알은체를 다가가, 그날 두고 간 강아지의 안부를 물었다. 내가 그간 녀석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는 걸 스스로 의식하면서 이를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수의사는 주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병원에서 계속 데리고 있을 수도 없어, 삼일 뒤 동물 보호소로 보냈다고 했다. 동물 보호소에 가면 어떻게 되는 거냐는 내 물음에는 나이가 많고 건강 상태도 매우 나빠 다른 곳으로 입양 가기도 쉽지 않을 거라고, 어쩌면 안락사됐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는 끝까지 차분했고 친절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악수를 청하고 자리를 떴다. 어릴 적 기르던 순이와 그날 만난 녀석의 눈이 겹쳐 떠올랐다. 여러 감정이 마음속에서 뒤엉켰다. 예보에도 없던 비가 늦가을을 적시고 있었다. 나는 수의사에게 따질 수도, 강아지에게 사과할 수도, 나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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