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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원도 시인 / 새벽 4시의 눈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4. 12.

정원도 시인 / 새벽 4시의 눈

 

 

노동은 밤을 낮처럼 건너기를 강요한다

속도는 언제나 더 빨라지기만을 재촉하며

대기권을 벗어난 눈알처럼 궤도를 튀어 나갈 듯,

야간노동의 후유증이 불면의 벽 속에 꽂혀

필 수 없는 붉은 꽃들이 벽지 위로 낭자하다

 

충혈된 두 눈의 신경이 실타래처럼 엉켜와

망막에 걸려드는 사물들이

해파리처럼 거꾸로 매달린 채 부유하고

 

거대한 해머로 뒤통수를 내려치듯

잠은 명징하던 사실들을

먹먹한 무의식으로 전환시킨다

 

옆에서 누가 죽어나가든 말든

다른 나라야 침략을 당하든 말든

빈 집과 살아야 하는 아내가

벽지 속의 꽃이 되든 말든

 

새벽 4시의 노동을 건너는 일은

야윈 당나귀가 버거운 마차를 몰고 가듯

화상 입은 눈알이 모래밭을 굴러가듯

앞만 보고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정원도 시인 / 야간정비

 

 

쇠를 갈아낸다는 것은

누군가의 살을 아프게 갈아내는 일

 

마멸된 쇠의 파편들이

스스로 몸을 갈아 어둠을 밝히다가

명멸하는 찰나의 개화가

고속으로 돌아가는 연마기 날 끝에서

피어난다

 

날려 보낸 입자들이 일제히

세찬 바람에 되살아나

시린 꽃이 되어 스러지는 야간노동

심야의 허공을 갈아내듯

두 눈 부릅뜬 연마가 계속되면

 

나도 저같이 아름다운 불꽃으로 돌진해가는

당신의 따스한 별이 되고 싶었다

 

 


 

정원도 시인

1959년 대구에서 출생. 대구공업고등학교 졸업. 1985년 《시인》誌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그리운 흙』(시인사, 1987)과 『귀뚜라미 생포작전』(푸른사상, 2011)이 있음. (전)한국작가회의 감사, (전)한국작가회의 연대활동위원장, 분단시대동인으로 활동. 현재는 건설기계 관련 자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