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리 시인 / 바람 불고 고요한
죽은 줄 알고 베어내려던 마당의 모과나무에 어느 날인가부터 연둣빛 어른거린다 얼마나 먼 곳에서 걸어왔는지 잎새들 초록으로 건너가는 동안 꽃 한 송이 내보이지 않는다
모과나무 아래 서 있을 때면 아픈 사람의 머리맡에 앉아 있는 것 같아요 적막이 또 한 채 늘었어요
이대로 죽음이 삶을 배웅 나와도 좋겠구나 싶은
바람 불고 고요한 봄 마당
김명리 시인 / 시학(詩學)
아침놀이 번지는 꽃밭 봄 마당의 꽃들 중에는 분통을 터뜨리듯이 피는 꽃,
참았던 울음을 끝내 터뜨리듯이 피는 꽃도 있다
꽃샘바람 잎샘바람 이제는 다 물러난 것 같은 오월 해당화 붉은 꽃등 곁에
팔순의 어머니, 주름진 눈가에 가물가물 분홍 물살 이는데
울지 말아라 아프지 말아라
오래오래 허공을 쓸어내리다가 잠잠히 어둠을 열고 들어오는 것처럼 피는 꽃도 있다
< 시인수첩 >201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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