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희 시인 / 게발선인장 가시
손톱 밑 가시가 일어선다 장가한 아들 왜 자꾸 넘겨짚느냐고 핀잔 남기고 돌아간 날 손톱 밑 가시가 찌른다 명절에 모인 형제자매들 별 뜻 없이 던진 말 눈 흘기며 돌아오던 길 게발선인장 가시 성가시다 친구모임에 아는 척 나서다가 말 사이사이 가시 박힐 때 다음 달 안 나갈 거라고 낮에 먹은 생선가시 가시 박는다 노는 데 미쳐 늦게 들어온 날 핑계거리 둘러대다 속 보여주고 양볼에 붉은 가시가시 솟는다 가금씩 먼 산 바라보며 지나쳐온 길 살아가며 헤어지고 싶었던 길 잦은 이사로 길 잃은 낯선 길 집문서 사업밑천으로 날려버리고 대답 없는 잔가시들 대못처럼 걸어와 속살에 박혔다 이제는 풀죽어 집문서 고이 모시고 살아온 살아갈 날 가시 박힌 별들 서쪽 하늘 찌르고 있다
이숙희 시인 / 봄 강가
바람이 발끝 세우고 와서 강물에 몸을 부빈다 주변의 모든 것들도 와서 제 몸을 풀고 하늘은 반만 내려 와 그들을 맞는다 은모래가 아랫도리를 물 속에 담그고 햇볕을 쬐는 오후 잎 하나 뿌리 하나에 묻어오는 이 기운은 전신을 열고 온 강을 끌고 어디로 가나 목까지만 햇볕을 묻힌 봄이 강아지풀 도꼬마리 질경이 민들레들 자리 옮겨 꽃 피우는 모든 공간을 그대로 내어주고 제 몸 무게만큼의 옷을 입고 강 전신을 깨우고 있다
이숙희 시인 / 사랑가
꽃밭으로 태양이 꽂힌다 꽃들도 숨 죽인 오후, 나비 한 마리 꽃잎에 앉아도 옴쭉 않는다 날개에 비벼진 햇살 금빛 얼룩을 지우다 미끄러진다
나비가 옮겨 앉는 자리마다 꽃들의 몸이 좁혀진다 잔물결이 팔월의 가운데를 통과하는 빛처럼 온 사물이 움직임을 주시한다 여린 향기가 꽃노래처럼 얹힌다 꽃잎이 익을수록 그 빛은 치열하다 선명한 잎의 結晶이 여름 오후 쨍 금 하나를 긋고 또 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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