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차애 시인 / 언니가 없는 언니나라
사람이 그렇게까지 좋을 수 있었다니, 여섯 살 때 내가 언니를 다 소비해서 언니는 언니가 없는 언니나라에서 산다
언니나라에는 언니의 골덴바지 색이 없고 언니의 웃음소리가 없고 모르는 발자국들이 언니의 발자국을 함부로 덮고,
내가 사는 시골집으로 언니가 왔다 오리는 종이인형과 공돌리기 기구들을 상자에 꼭꼭 담아서 가지고 왔다 언니, 유성음 맛 속살을 내 입에 넣어주었지
할머니와 큰엄마가 서로의 검은 우물이 되는 집으로 언니가 왔다 따끈한 찐빵 같은 언니 갓 삶은 햇감자 맛이 나는 언니 밤이 와도 지지 않아 시골집 마당을 우쭐거리게 하는 언니
달처럼 빙빙 언니를 따라 돌다 언니의 하얀 목에 매달린 밤 언니는 짚 인형처럼 풀썩 쓰러지고 나는 종이인형처럼 땅에 납작 쏟아지고 우리의 머리에서 솟은 피가 붉은 달을 적시고,
사람이 그렇게까지 좋을 수 있는 밤이 앨범 귀퉁이를 잊어가는 사이 찐빵은 굳어가고 감자바구니는 식어간다
언니 사람이 그렇게까지 좋을 수 있어서 언니는 언니에 걸리고 언니에 빠지고 언니에 묻히고 언니가 없는 언니나라를 술래처럼 빙빙 돌고,
반년간 『상상인』 2021년 상반기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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