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춘희 시인 / 종이꽃 16-계단 오를 때 한 발자국씩
계단을 오를 때 한 발자국씩 세상과 멀어졌다 닫혀진 문 앞에서 멈칫, 낯선 기억의 한 끝 손바닥만한 작은 창 통해 놓아 버리고 나는 깊이 모를 검은 우물 밑구멍에 쑤셔박혀 버린 개 같은, 털빠진 오욕의 시간 죄의 밑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다 외부에 돌출된 얼굴을 버린 그리움 하나, 누군가 무작정 눌러 주길 기다리는 초인종 되어 용인병원 페쇄회로 한가운데 주저앉았다 삶의 견딜 수 없는 중력에 밀려 여기까지 흘러온, 봄이 채 피지도 못하고 심한 조울증을 앓는다 막다른 독방에 갇힌 내가 누군인지 나도 모르겠다 손과 발이 잘려나간, 통나무 몸통 가득 또 다른 연초록 잎사귀 피워내는 숲, 숲, 숲...... 영혼의 우주 속을 둥둥 떠다닌다 햇빛이 무서워 대낮에도 블라인드 내린, 끊어진 길 어디쯤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최춘희 시인 / 종이꽃 14-나의 詩
무정형의 아메바 되어 너에게 스며들고 싶다 아무도 몰래 너의 눈이 되고 코가 되고 입이 되어 스스로를 망가뜨린 힘으로 세상 밖 한 채의 집을 짓겠다 가난한 이의 발끝 검은 흙덩이 떼어 주고 버려진 자의 눈물 덥히는 한 소절 노래였다가 밍밍한 가슴 짜디짠 소금이 되겠다 말라 비틀어진, 너의 생 위에 무정형의 아메바 되어 물 . 길 . 하 . 나 . 뚫 . 고 . 싶 . 다 그 물길 거슬러 잘 벼려진 시퍼런 눈빛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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