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신 시인 / 조직이여, 안녕
이제는 손 씻고 바닷가 오두막에서 시나 쓰겠어 접선은 여러 번 끝났으니까 부서진 조개껍질의 천진한 입술 그 사이로 조그만 작살을 던지는 장난스런 폭양
한판 승부가 끝나면 스파이들은 시가를 피웠지 하지만 이젠 안 돼, 여긴 벌써 공기가 아주 나빠졌거든
오 위험해라, 낮은 탄성처럼 밀정의 물보라를 밀어내는 모래 둔덕 실크 잠옷같이 나부끼는 창문을 열고 나는 노래나 접어 날리겠어 밀애보다 뜨겁던 임무는 여러 번 끝났으니까
임혜신 시인 / 겨울 연가
드디어 레벨 32, 적막이 왔어 끝내지 못한 문장들이 눈발처럼 쌓였다 흩어지는 거리 플레이어들은 잡았던 손을 놓고 은거의 자물쇠를 거는 바람의 덜커덩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 이제 램프를 켜줘 빈방에 따스한 입술 같은 전원을 넣고 황량한 북극의 이야기를 들려줘 덩굴장미와 독수리를 몰며 달려온 터널의 시간들 싸울 수 있었으므로 살아남았던 날들이 재난처럼 멀어져 가고 게임룸 87이 열리고 있어 그대 나의 플레이어여 마지막 게임은 아날로그라는 걸 알고 있는지 오렌지빛 전등 아래서 듣는 슬픈 이야기처럼 홀로 돌아가는 길 패배의 고수처럼 눈 속에 떨어진 산수유 열매 차고 둥근 불꽃을 사르며 레벨 33을 걸어 오르는 그대 나의 천적이여, 별과 바람과 햇살과 짐승의 발과 눈물은 어찌하지? 북풍의 덧창 밖으로 웅숭거리며 멀어져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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