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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재형 시인 / 민들레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4. 19.

조재형 시인 / 민들레

 

 

배냇저고리 한 벌로

수의까지 삼는

그의 검소함을 따를 수 없다

 

햇살을 주식으로 하되

야식으로 별빛을 선호한다

한 달에 보름, 달빛을 섭취하는 그는

특식으로 단비를 즐긴다

 

자리의 높낮이를 따지지 않는다

진 데와 마른데 음지와 양지를 가리지 않는다

시골 담장이건 빌딩숲이건

자투리땅이면 보금자리를 튼다

 

대물림으로 씨족 간 다툼을 남기지 않는다

지상권을 빌미로 이웃 화초와 담을 쌓지 않는다

 

내가 이를 표절하고자 하나

감히 베낄 수 없다

 

 


 

 

조재형 시인 / 사채공화국

 

 

등록금이 바닥난 나는 대부업자를 찾는다

살인적 금리로 급전을 수령한다

원금에 이자를 보태 재대출하는 꺾기 수법에

이자는 원금의 두 배로 폭풍 성장한다

 

갖은 강박에 유흥가 종사원으로 매매된다

알탕갈탕한 전세 보증금이 인질로 잡혀간다

영문을 모르는 식솔들이 길바닥에 나앉는다

 

아직 날것인 나는 아파트 옥상에서 자진 폐업한다

사채 덕분에 사체가 된 나

사회면 머리기사로 부음을 대신한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서 곧 삭제된다

 

모두들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OECD 조국은 대박 뉴스가 늘어 간다

일군의 시인들은 아름다운 강산이라고 강변한다

 

묵시의 눈가림이 연속 탈출을 엄호한다

공화국의 주인을 자임하는 어느 누구도

함부로 타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

 

 


 

조재형 시인

2011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지문을 수배하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