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연 시인 / 포도 밭에서
빈들에 마른 풀잎이 울고 있다 포도 밭둑을 안고 달리던 열차 하늘의 푸름 뚝 꺾어 회색 무덤으로 질주 했다
얇은 햇살 내려앉은 따뜻한 삼월 초라한 간이역에서 잿빛 문 열고 마지막 승차 하신 손님 달 갈이 여러 해 지나 낮달 되어 중천에 떠 있고
농운이 휘어드는 오후 아늑한 하늘가 흑진주 잉태한 하얀 나무줄기 입술위로 봄비가 내리고 있다 그의 슬픈 눈물이 흐르고 있다
정다연 시인 / 억새꽃
낯설지 않는 언덕 맑은 하늘에 안긴 항구 빚어 올린 은백의 머리위 붉게 태우는 생의 허물 한점
가슴을 찢어 슬픈날을 비워내고 있다
하얀 울음 벼랑끝 바다로 쏟아지고 떠나야하는 먼 약속인지 몸은 온통 타오르는 불꽃
여무는 햇살을 지나 자라나는 세월을 지나 허기진 나그네들의 지친 발걸음 해를 따라 넘어가고 있다
정다연 시인 / 포도밭에서 2
옥천군 이원면 구룡리 우암 선생의 헛기침 소리에 생가의 봄날은 첫물이 오르는데 흑진주 장식하시던 어머니 가진 것 다 비우시고 묵묵히 바람 언덕에 누웠다
거칠었던 청춘 툭툭 썩은 풀 더미 헤치고 나와 비통한 넋두리 늘여 놓고 건너 잿빛 낡은 집 가죽나무 그림자에 눌려 힘없이 주저앉고 있다
굽어진 허리로 바쁘게 달리던 논둑길엔 다닥다닥 피던 질경이 금방 뛰쳐나올 여유도 생겼는데 마주칠 수 없는 운명은 하얀 봄꽃으로 피어 환하게 포도밭을 휘 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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