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심 시인 / 드라이브 스루
처음엔 재미가 반이었다.
길을 가다 영구차가 보이면 이때다 싶게 목소리 가다듬어 모닝커피를 주문하듯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소리쳐 보는 것인데
"나의 액운도 다~아 가져 가주시오~"
방죽안댁 청상 우리 외할머니 동네 초상이 나자 꽃상여 꽁무니에 대고 누구라도 들을세라 가만가만 입말로 그렇게 달싹거렸던 것인데
어린 자식 넷 놓고 가버린 지아비 징용 가 돌아오지 못한 큰아들까지 굴곡마다 낀 생의 녹슨 액운을 징 소리 하나 없는 푸닥거리로 독경 외듯 불러내는 액땜인 것인데
재미 삼아 드라이브 스루로 외쳐대다가 저런! 마지막 길도 서러운데 내 짊조차 지워 삼도천을 휘청이며 건너게 하랴 다시! 노잣돈 꽂듯 재미 쏙 빼고 주문한다
"부디 모든 것 탈탈 털고 편히 가시오"
조영심 시인 / 담살이
그깟 모본단 한 감에 팔자가 뒤바뀌는 세상도 있었나니 하, 방죽안댁 큰아들 징용장 바꿔치기한 구장 덕택에 현해탄을 건넜으나 끝내 돌아오지 못했는데, 낮은 토방엔 개맨드라미만 붉디붉게 피고 질 뿐
열 살배기 막내, 홀어미 그늘에서 숨 쉬는 것도 부끄러워 밥 수저 드는 것도 죄만 같아 두 발 부르트도록 가파른 강둑이며 논두렁 밭두렁 죄다 훑고 다녔는데, 안 터 부잣짐 꼴머슴 풋내 나는 낫질에 허기진 꼴망태, 그 꼴이 그 꼴이었는데,
허, 아비 없는 울타리는 주인 없는 대문 시도 때도 없는 공출이며 수탈이여 도적들 먹거리 곳간, 진귀한 고방이 따로 있다더냐 살아생전 머슴살이 면해볼 날 오긴 온다더냐
푸른 설움 악물고 황소처럼 일만 해도, 예나 지금이나 타고난 팔자 현고학생부군신위 여덟 자는 바뀔 줄 몰라 담살이 후에 다시 찾은 그 울타리 설운 자리에 새 꽃은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고
드난살이 마치고 머리 얹어도 또 담살이 담살이 모본단 한 감이 아직도 통하는 세상 언제 이 담들 허물어질까 곳곳마다 거대한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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