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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윤훈 시인 / 붓꽃이 있는 풍경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4. 21.

이윤훈 시인 / 붓꽃이 있는 풍경

-자화상

 

 

앞뜰의 노란 붓꽃이

잠시 실바람을 그리고

고양이의 줄무늬 건반을 살짝 치다 지우고

허공에 방울새를 띄었다 지우고

나를 금생의 한 풍경으로 쓸쓸히 앉혔다

 

누가 후생에서 쓸쓸히 나를 보고 있다

 

<생의 볼륨을 높여요>, 시인동네, 2018.

 

 


 

 

시조 당선작

이윤훈 시인 / 말들의 사막

 

 

눈물이 사라진 곳 사막이 자라난다

풍화된 말에 덮혀 잠귀 어두운 길

눈을 뜬 붉은 점자들 혓바닥에 돋는다

 

금모랫빛 말들이 줄을 이뤄 쌓인 언덕

전갈이 잠행하는 미끄러운 행간 속에

슬며시 꿈틀거리며 입을 벌린 구렁들

 

눈물샘 깊은 데서 오래 맑힌 말들

발걸음 자국마다 한 그루씩 심어놓아

파릇한 수직의 빛들 방사림을 이루고

 

신열 오른 말들이 아른대는 신기루 속

물 냄새 맡은 낮달 사막을 건너간다

어디서 선인장 피나 마른 입 속 뜨겁다.

 

 


 

이윤훈 시인

경남 합천에서 출생. 200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202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