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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 시인(안동) / manna
눈을 뜨고 꿈을 꿔요 내 몸에 달린 알집을 키우며 만나 만나기를 원하지만 백일몽은 시식 코너 음식 같아요 금세 삭을 상상이냐고요 계단 오르는 걸 스스로 부축하는 거죠 바람과 상상이 만나는 곳은 짠물로 겹쳐 꿈은 묽어지고 역설수면 지나 스틸 사진 그리다가 퇴근 무렵 호주머니엔 주름만 가득해요 어스름만큼 변색할 꽃을 싣고 닿지 못할 바다로 노를 저어요 쉴 사이 없는 틈에 숨어도 남은 일로 전화받으며 구두 신고 대기 중 내 몸은 태우기를 멈추지 않아 먹방으로 더 심해진 기갈 먹고살기 바빠 길은 늘 어긋나 언제 쉬이 배를 불릴까요 만나는 만나기 전에 사라지지만 생각할수록 몸은 더 녹슬고 침식작용으로 누울 줄만 쉿! 숨길까 봐요 공짜를 바라다가 공쳐도 좋아요 만날 수 없어도 만나며 사는걸요
박용진 시인(안동) / 도무지
앨리스, 어서 오렴 입구를 찾기 어려웠지. 어떤 연주를 기대했을까. 흑백 건반을 두드린 해머 먼지와 점적실 공기로 아우성이야. 엉키지도 않았는데 기가 막힌 건 질긴 선이 늘어져 자리 차지하기 때문인가 봐. 게걸스러운 진창과 비창 사이 무뎌질 날 고대하며 공중에 집 지어 안식하는 척하지. 약한 목등뼈로 무너뜨린 하늘 아래 모두는 아틀라스. 상한 젓갈 삼키면서 사람 냄새 저절로 멀어져. 거울로 망명을 꿈꾸는 아이들은 먼 나라 얘기로 흘러 외줄에 감친 노력에도 건반 위엔 얼룩이 커져 가는 걸. 도회지로 갈수록 웃음은 유적이 되고 우리가 민 슬픈 서술은 어떤 흔적이 돼. 방황 후에 오는 여독에 찌들 때도 급한 하강의 울렁증으로 꿈이 멀어질 때도, 뜨거워진 머리에서 어떤 낭만은 약통에서 떨어진 유통기한 지난 알약처럼 오기도 해. 각진 그림자 끼고 반음이라도 좋아 훗날 우화로 남을 짐작을 키우게 연주를 준비해 볼까. 어쨌든 미안해, 이상한 세계로 불러들여서
『파란 꽃이 피었습니다』 (천년의 시작, 2021)
박용진 시인(안동) / 익명의 다음
뭐라고 불렀나
저수지가 얼었다 얼음이 부서지기 시작하고 물의 파열음이 즐거웠어 얼음엔 경첩이 있을까 녹슨 거나 녹는 거나 그게 그거니 상관없이
저수지는 깊어가고
깊은 것은 왜 어두운가 프로필엔 그은 줄, 누구야 체취에 대한 해독은 다크 웹에서 종이가 찢어지도록 길게 그은 밑줄의 악플로 대신해야겠다
익숨함 뒤에 오는 느슨함이 생겼다
멀리서 보면 어슷비슷한 지문들인데 촉수가 된 손가락은 여전히 얼음 속을 더듬고
집은 어디냐고요
이것들은 아무래도 꿈같습니다만 전날과 당일의 기분이 다른 공휴일은 저물지 않는군요 이 무거운 시간엔 뜨거워지다 만 존댓말이 녹는 기대를 해 볼게요
자판의 자세를 좀 더 웅크렸을 뿐이라고 의심을 받습니다
구원이 어렴풋합니다
박용진 시인(안동) / 닫힌 창을 스치는 바람에
나의 죄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세계를 불태우는 동안 잔해의 목록은 두 손에 오래 남아
바람에 커튼은 하염없이 흔들리고 부서진 탁자 밑으로 증폭하는 아이의 울음 소모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며 밤마다 쓰던 망명 신청서를 꺼낸다
당신은 누군가의 아이
모자이크 처리를 해도 거울엔 기운 표정이
생각과 영혼은 진동수가 다른가 봐
천장 교미하는 쥐 소리와 주정뱅이가 떨군 걸음이 어른거리는 창을 뒤로 두고 목을 매단 거실에서 발버둥은 계속일 거고
무너지기 바빠 언제나 바깥이던 이런 곳이 있었다
왜 나를 닮아 가는가,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세상은
-시집 『파란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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