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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호 시인 / 나라는 시간
누군가 내 심장을 한입 베어 먹었을 때 한입만큼 비어버린 심장을 버렸을 때 산다는 것이 죽음을 참는 일일 때 지구가 외계인의 성경 속 지옥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악마들의 천국이 여기가 아니라고 이상한 질문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때 영혼은 영혼, 천사는 천사, 당신은 당신 인제 세상에는 아무런 비유도 필요가 없을 때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에게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을 때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에게 새로 가르쳐줄 것이 없을 때 어제부터 너를 사랑하겠어 내일은 너를 사랑했어 지금 너를 사랑했었어 그 사랑을 사랑했어 오래 들여다보아도 손댈 수 없는 비문만이 남을 때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우리는 서로 병이 깊다고만 생각될 때 기도를 그치는 영혼을 꿈꿀 때 영혼을 그치는 기도를 올릴 때 거울에 비친 눈동자가 한쪽에는 죽은 신이 다른 한쪽에서는 당신의 뒷모습이 앉아 있을 때 내가 신을 닮아갈 때 점점 세상에서 달아날 때 밤하늘에 백반증 같은 눈이 내릴 때 별은 밤의 사리(舍利) 같을 때 가벼워진 심장으로 소복이 눈이 쌓일 때 나도 한 마음의 인간일 때
이현호 시인 / 마라톤
내가 조깅을 한다면 술이나 끊어 바보야, 너는 웃겠지
밤 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똥별 같은 그 미소가 좋아 운동화 끈을 조인다
산책로 외야수처럼 서 있는 가로수들, 금방이라도 뿌리를 들고 뛰쳐나갈 것처럼
왜 야수처럼 서 있나
부푸는 폐를 안고 나무 사이를 달린다 불타는 꼬리를 끌고 태양 주위를 운행하는 혜성이 나의 주법(走法)
천천히 뛰어 바보야, 너는 웃겠지 나는 천천히 그래서 달린다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이현호 시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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