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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명진 시인 / 글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5. 6.

정명진 시인 / 글

 

 

오늘도

원고지 칸을 메운다

 

펜이 칼보다 날카롭다는 말은 옛말이 되고

기품 있던 글쓰기는

컴퓨터 시대와 함께 끝났고, 이제

인터넷에 떠도는

헛소문이

사람을 죽인다는 괴담만 무성하다

괴담으로 죽은 사람,

심장에 칼 맞고 피를 철철 흘리는

사람 여럿이란다

 

피를 토하며 글을 쓴

박정만 시인은

광야 저 너머로 사라지고

생명을 살리는 들은

성경뿐이라, 성경 아류의 글들은

다 가짜다

 

오늘

원고지 칸을 채우는 일은

괴담 무성한 세상에서

성경 아닌 글을 쓴 헛손질

 

비 개인 하늘이 파랗다

 

 


 

 

정명진 시인 / 성경읽기

 

 

의사는 시력이 떨어진 이유가

백내장 때문이라는데 나는

비문증이 생기고 나서야

안과를 찾아갔다

 

성경읽기를 게을리 하면서

수단 방법을 다 써가며 성경을 읽는다

MP3로 성경을 듣고

컴퓨터에 성경읽기를 깔아놓고

심지어는 노트북으로도 성경을 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한 번은커녕

힌 년에 서너 번 읽기도 힘들어져서

아침, 스트레칭을 하면서도 성경태입을 듣는다

 

오늘 아침 성경을 읽으며

비문증이 하나님의 경고임을 알았다

백내장 때문에 시력 교정이

나오지 않는게 아님을 알았다

 

내 영혼의 허기

 

 


 

 

정명진 시인 / 쟈스민 화분

 

 

쟈스민이 폈어요

축축 늘어진 가지마다

꽃이 폈어요

 

지난 겨울, 수도까지 얼어붙는 추이에

생명을 부지했던 화분이

봄빛이 퍼지기도 전 꽃망울이

맺고

줄줄이 피어 향기나네요

 

이제

꽃은 다 지고

분갈이를 했다

길을 넘게 뻗는 가지

그 무성한 잎사귀가 신기해

물을 준다

 

잊어버릴 만하면 늘어진 잎사귀

사이로 새순이 돋는다

 

알싸한 향기

기억이 새롭다

쟈스민 화분 하나

키운다

 

 


 

 

정명진 시인 / 친구에게

 

 

네가 있어서, 나는

무조건 좋았다

일주일을 넘게 끙끙 앓다 잠든 밤에도

어머니가 잔화를 바꾸어주면

언제나 뛰어 나갔다

 

깊은 밤 새벽 2시 자다 깨어도

귀찮은 줄도 모르고 전화를 받았어

멀리 있어도 늘 가까이 느끼며

살았지, 네가 있어 아름다웠던 날들

 

백합처럼 향기롭고

연꽃같이 우아한 아취가 있어

기품있는 당신은

긴긴 여름날 정겨운 봉숭아꽃

그리운 해바라기

꿈같은 시간

 

무지개를 좇아간

잡히지 않는 내 사랑

나의 친구여

 

 


 

정명진 시인

1963년 충남 금산에서 출생. 2013년 <<유심>>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