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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륭 시인 / 그 집 앞
내가 없으면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방 안에 파리나 모기 대신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집, 고양이는 십 년을 넘게 키웠지만 사람이 되지 않았다
집주인은 이미 죽었지만 죽었는지 모르는 손님들이 화장지나 식용유를 들고 문을 두드리는 집 꼬깃꼬깃 구겨져 뒹구는 유령의 그림자 몇 장을 세어보다가 돌아서는 집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너무 자주 나마저 나를 기다리지 않는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게임처럼 사랑을 즐기는 소년과 배달 음식처럼 사랑을 잘 받는 소녀들이 우글거리는 집으로 꾸며야지 그러려면
시를 써야지 사랑을 해야지 내가 없으면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니까 내가 시인이 되어야지
시가 오고 있다 시가 오면 봄은 와도 되고 안 와도 그만인 집
그러나 시를 쓰려면 당신이 필요한 집, 이사를 가기 위해 지은 그런 집이 있다 어느 날 훌쩍 유령이 되기 위해 매일 밤 그 집을 들어서는 사람이 있다
계간 『시인수첩』 2021년 가을호 발표
김륭 시인 / 콧노래 ㅡ월간 벌레 2
남들이 집을 보러 다닐 때 나는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 안고 조용히 집을 불렀다. 신문지를 깔고 앉아 톡톡 발톱 깎는 장면을 보여주었는데 벌레다, 하고 집안에서 수군대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집을 강에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집이 스스로 몸을 던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벌레로서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나는 게으르고, 가난했고, 정신이 여치와 노래를 부를 만큼 야위었는데 남의 집 창문을 책장처럼 뜯어먹고 살아서 그럴 것이다. 살아가는 냄새보다 죽어가는 냄새에 더 가까워진 나는 없던 집이 갑자기 나타나 까맣게 잊고 살던 애인을 무당벌레처럼 보여줄까 봐 더럭 겁이 났다. 집에 혼자 남겨져 전화번호를 뒤적거리는 일보다 가난한 일은 없었다. 종이식탁 위에 막 끓인 라면냄비를 올려놓고도 달걀처럼 굴러온 무덤이 보였다. 나는 도망가는 내 이름을 붙잡아 문패로 달아주었다. 집은 떠내려가거나 부서지기 쉬운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나는 가만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배가 고프거나 아파야 했다. 집은 얼굴 없는 물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집이 스스로 몸을 던질 때까지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며 볼펜을 입에 물었다. 나는 집이 더 이상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을 찾아 막 돌아다니는 한 마리 벌레라고 썼다. 끝은 언제나 밤이었다. 마른 물고기처럼 내가 시작된 곳이었다. 사랑은 오늘도 집에 없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또 떠나야 했다
웹진 『시인광장』 2021년 1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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