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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시인 / 허밍은 거침없이
잉어는 평화롭게 헤엄치지만 물을 벗어날 수 없고 물은 거침없이 흐르지만 보를 넘어갈 수 없네
물을 벗을 수 없는 잉어의 자유와 보를 넘을 수 없는 물의 질주는 악보 안에서 평생을 사는 바이올린처럼 아름답고 성실한 반복을 연습하는 중
잉어는 평화롭고 물은 거침없고 바이올린은 느릿느릿 헤엄치다 격렬히 달려가고 나는 그 반복 속을 걷다가 새로운 해석에 또 실패한다
물을 벗어날 수 없는 잉어가 머릿속으로 헤엄쳐오고 보를 넘을 수 없는 물이 오후의 감정을 파랗게 적시고 악보 밖으로 나온 바이올린이 내 허밍을 연주해도 불가능한 것은 다 생각 안에만 있네 생각이라는 단어를 사랑으로 바꿀 수도 있겠지만
잉어와 물은 음악처럼 흐르고 강이 얼면 흐르는 것에서 음악이 분리되고 멈춰버린 반복은 또 다른 반복으로 흐른다는 내 생각이 비로소 풍경이라는 불가능을 자유롭게 풀어놓을 때 나는 천변에 살지 않으면서 천변을 벗어날 수 없는 귀신이 되었네
이제 생각은 평화롭고 허밍은 거침없고 바이올린은 같은 곡을 연주하지만 다르게 듣는 귀가 생겼다 얼음이 녹아 물이 흐르고 잉어가 헤엄치는 천변을 걷는다
해석이 막 시작되었다 해석이라는 단어를 사랑으로 바꿔도 좋다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계간 『애지』 2021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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