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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 시인 / 적도로 걸어가는 남과 여
지뢰밭 가운데서 한 남자가 일직선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적도를 따라 걸어가는 중입니다 왜 적도로 가느냐고 묻자, 전쟁이 끝나 우리가 만날 수 없을 때 부서진 건물 사이를 지나 너는 왼쪽으로 걸어 나는 오른쪽으로 걸을게 서로를 찾아 헤매다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다면 적도를 향해 걸어가자
지뢰밭 가운데서 한 여자가 적도를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김성규 시인 /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누군가 나에게 옷 한 벌을 맡겨두고 갔다 하얗고 뻣뻣하게 주름잡힌 옷을 쓰다듬으며 나는 잠이 들었다 그날 이후 밤이면 참을 수 없는 허기가, 쉴 새 없는 고통이, 방 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단 말이야 밥을 먹던 동생이 내 방문을 잠근다 장판을 들춰보니 벌레들이 기어나온다 마디를 웅크렸다. 폈다 천장으로 낄낄거리며 기어올라가는 벌레들 장판 밑으로 하수구가 흐르다니 ...... 비닐봉지가 폐수를 타고 떠다니고 옷을 감추려 장롱을 열자 열지어 기어나오는 벌레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이 들면 내 머리카락에 알을 슬어놓는 벌레들 오물에 뒤섞여, 방 안과 천장을 새카맣게, 터지고, 옷 위로 쏟아진다 새벽마다 기지개를 켜고 뛰어다니는, 섬유 사이에서 뭉개지는 벌레들 더 이상은 이 옷을 가지고 있을 수 없어 누더기가 된 옷을 밟으며 울부짖는다 늙고 또 늙어야 하네 걸레가 된 옷을 붙잡고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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