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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시인 / 버리긴 아깝고
일면식이 없는 한 유명 평론가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서명을 한 뒤 잠시 바라보다 이렇게까지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싶어 면지를 북 찢어낸 시집
가끔 들르는 식당 여주인에게 여차여차하여 버리긴 아깝고 해서 주는 책이니 읽어나 보라고
며칠 뒤 비 오는 날 전화가 왔다 아귀찜을 했는데 양이 많아 버리긴 아깝고
둘은 이상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뭔가 서로 맛있는 것을 품에 안은
그런 눈빛을 주고받으며
박철, 『작은 산』 , 실천문학사, 2013년
박철 시인 / 악연
언제나 아픕니다 아내의 투병은 나를 향한 것이고 나의 투병은 아내의 과녁으로 날아갑니다 습관처럼 날 선 말이 쇳소리를 낼 때마다 던진 말대로 둘 중의 하나만 악연이면 같이 못 삽니다 그러나 둘 다 악연이면 참고 삽니다 세상은 그러려니 하고 살 만합니다 울다가 세금 내러 은행엘 가고 은행 가다 이웃 만나 깍듯이 해바라기 되어 인사 나누며 웃습니다
해를 쫓는 달을 보셨나요 사랑하진 않아도 버리지 못합니다 뜨뜻미지근한 안타까움이 조금 있다고는 할까 누가 먼저 버려 버려져 해와 달 그 사이 같은 천벌을 받나 그걸 기다리며 그냥 세월 다 보냅니다 어쩝니까 그러다 빈터에 둘뿐인 것을
부슬비 오는 어느 가을날 손잡고 내지에 드는 것도 둘뿐일 텐데 악연이죠
박철, 『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으니』,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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