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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문자 시인 / 꽃을 스치고 죽음을 스치고

by 파스칼바이런 2022. 5. 11.

최문자 시인 / 꽃을 스치고 죽음을 스치고

 

 

꽃은 죽음을 모른다네

 

꽃들이

그렇듯 피면

죽음조차 빛난다

 

깊은 밤

이 밤을 다 마시고도 괘종시계는 그 자리에 서있었지

창문을 열면

거기도 꽃과 죽음이 가득해

 

이 거리에서

죽음을 스친 꽃들은 모두 내가 가질게

 

꽃은 죽음을 모른다네

 

지구 모퉁이마다 죽은 자들 누군지 알 수 없고

몰려다니며 피는 더 아름다운 저 꽃들

 

꽃은 오늘

피려는 것인가 떨어져 죽음에 스치려는 것인가

 

바이러스로 희망을 뒤엎는 엔딩

요즘 목숨이 꽃잎처럼 자주 떨어지는데

누가 꽃을 스치는 이 죽음을 해명해주나

 

죽어본 적도 없는데

머나먼 지구 어느 나라의 언어로 죽어가는 그 나라의 꽃들과 그

나라 사람들 얼굴과 떠오르는 마지막을

나는 알 수 없다네

 

반년간 『서정과 현실』 2021년 하반기호 발표

 

 


 

최문자 시인

서울에서 출생.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사과 사이사이 새』 『파의 목소리』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 등이 있음. 박두진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신석초문학상, 한국서정시문학상 등을 수상. 협성대 문창과 교수, 同 대학 총장, 배재대 석좌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