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우 시인 / 줌
줄을 선 화장실 왼쪽은 텅 비었지
치마에 얼룩진 무늬가 출렁거려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미끄러지는 생각이 주렁주렁 열려 바지에서 출발한 수많은 낙서들 옆구리에서 빨갛고 파란 피를 흘려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화장실이 휘청거려 늙어버린 소문이 녹아내리고 싱싱한 소문은 쓰레기통에 버려지지 아무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 태어나고 누군가 거짓말처럼 죽어가고 3분마다 사건이 태어나는 거리, 스팸문자가 날아들고 누군가는 목소리를 위조하고 도시의 귀퉁이마다 비집고 앉은 화장실 역을 떠돌던 낡은 트렁크를 열면 크고 작은 화장실이 쏟아져 두루마리에서 나풀거리는 이야기 미끄러지는 물소리 젖지 않는 화장실 마치 수련 꽃처럼 바닥에서 피어 거울속을 들락거려 거짓말처럼 닫힌 얼굴 신발의 두런거림 거짓말처럼 찾을 수 없는 화장실
* 시사사 엔솔로지 「노이즈4집 」 2015년
박지우 시인 / 사소함에 대하여
1
바람의 지문이 찍힌 생각들 차가운 금속성의 소리가 나지
침묵의 커튼을 친 동그라미의 변주 기억이 굴러다니는 식탁에는 네 개의 컵이 놓여있지 넘치거나 비어있거나 금이 간 컵이 부딪히며 냄새를 흘리지 빗물 냄새 녹슨 쇠사슬 냄새 눅눅한 일기장의 냄새 홀짝홀짝 뜨거운 소리와 식어버린 소리의 증간에 잡음이 끼어들지 울퉁불퉁 각을 세운 파열음들 네 개의 컵 사이로 비가 내려 언젠가 거울 속에서 내리던 비
우산도 없는 식탁은 밤새 젖은 꿈을 꾸지 네 개의 의자가, 모처럼
2
결혼에 세 들어 산다
사랑이라는 무기가 없어 건조한 계절이 토핑 된 식탁이 흘러내린다
거울의 안쪽, 그림자가 포개져 있는 포크와 나이프, 얼룩진 물방울이 피어오르는 아침은 가깝고도 멀다
손가락이 없이 꽃을 피우는 낯선 생각을 끌어안는, 비밀스런 감촉 이를테면 달콤한 귀, 나만큼만 들어갈
원피스를 입은, 아침이 뒤뚱뒤뚱 실룩거리던 갈색의 선글라스 옆길로 오늘이 엉덩이를 털며 기울어진
* 2015년 시와세계 가을호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선애 시인 / 가벼운 산 외 5편 (0) | 2022.05.11 |
|---|---|
| 김영승 시인 / 반성 16 외 7편 (0) | 2022.05.11 |
| 최문자 시인 / 꽃을 스치고 죽음을 스치고 (0) | 2022.05.11 |
| 정영효 시인 / 분명한 밤 외 1편 (0) | 2022.05.11 |
| 김성백 시인 / 그레타 툰베리에게 외 1편 (0) | 2022.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