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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훈 시인 / 저물녘
남반구를 떠난 눈보라가 북위 32도를 지나 북상 중인 계절에 가로수들을 장식하는 3촉짜리 빗방울들
저 빗방울들이 출발지에서 꾸물대지 않았다면 막연한 기다림도 질척대지 않았을 테지
어스름의 촉수(燭數) 낮은 분별이 범람을 해 식어버린 한숨이 입김으로 연소한다.
땅거미와 접속하면 굳기름처럼 식어서 불투명해지는 것들
이슬과 수액만 먹고 얼마나 버틸 수 있겠냐고 지난여름 짝짓기를 못 한 매미가 가로수 허리춤에 매달려 염통 쥐어짜며 울 때
끝자락이 동그랗게 말리는 울음은 얼마나 다급한 것인가!
잦아들어야 촉수를 거두는 빗줄기들
가까이하려고만 하면 멀어지는 것들이 있다고 저문다는 생각과 잦아든다는 느낌이 서로 어깨를 겯는다
어둠 속을 들여다보려면 어둠에 익숙해져야 해 멀어져가는 의욕이 식어가는 생기(生氣)를 부축하고 비치적대면
어느새 가까워져 친숙해지는 간절함은 하늘 아래 첫 동네 거주민답게 계절을 앞서 살고
저물녘에 도착해서야 숭고해지는 것들.........
어둠이 눈에 익자 쓸쓸함과 의기투합하면 절박해지는 자문자답이 개밥바라기가 샛별로 뜬 서녘 하늘을 응시한다.
최용훈 시인 / 고향
살다 보니 종종 왜 어머니 뱃속에서 부터 사람 꼴이 제대로 된 뒤에야 머릴 땅 쪽으로 둔 것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한국시인협회 刊 『 패랭이꽃의 안부를 묻다 』 에서
최용훈 시인 / 절망을 혁명하고 싶소
삶은 날품을 파오, 죽음의 피고용인이요. 별별 일들을 다 하고 일당으로 잠을 지불받소 잠을 아껴가며 일했소만 체불되는 날이 많았소 두 달 넘게 품삯 밀렸을 때가 있었소 파산지경에 이른 삶이, 알약을 먹고 잠을 횡령했다가 죽음에게 불려가 해고될 뻔했소 지금도 벌충을 하느라 잠을 자면서도 일을 하는 꿈을 꾸오 죽음이 부르주아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소 해고되기 전에 자진 사표를 쓰는 삶이 이 나라에서만 하루 서른다섯 명쯤 된다고 하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일이 벅차 아버지는 의식을 팔아버렸소 소문을 듣고 방문판매 온 목회자가 죽음의 우월성을 가족들에게 설명했소 계약서에 도장 찍듯 기도말미에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아멘이라고 언약을 했소 내 최대의 불효는 잠을 가져가지 않으려고 뜨고 가신 아버지 눈을 감겨드린 것이오 나는 죽음에 굴복해 종교를 갖고 싶지는 않소 이념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란 없소 천국도 사랑이란 굳건한 이념이 있소 살아서는 대면할 수 없는 권력자가 통치를 하오 일인독재요 평등의 기치아래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오 치성과 기도로 사후세계의 기득권층이 되려는 사람들은 그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부르오. 죽을 때 빈손으로 간다는 말을 거짓말이오 주검은 자기 몸에 축적한 잠을 가지고 가오 죽음은 공평해 보이지만, 주검은 살아 생전 각 자의 실천궁행의 모습으로 마지막 형상을 이루고 있소
영생은, 잠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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