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섭 시인 / 장구한 파멸
너는 달릴 수 있다 그러나 도망치지 못한다 너는 울 수 있다 그러나 눈물이 남아 있지 않다
전해오는 연원은 사라진 악보에서 찢어낸 한 소절처럼 너를 이야기한다 너는 문득 흔들리는 달을 바라본다 에서 끝나버리는 구절이다
산책길에는 꽃잎이 흩날린다 뉴스에선 월진이 관측되었다고 한다 멀리 운구차가 지나간다 가로등이 켜진다 유리창 너머로 차를 마시는 남녀는 지직거리며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한다 불빛에 번득이는 빗줄기 사이
너는 지금까지도 오래 걸렸고 마지막은 멀었다는 것을 잘 아는 앞뒤 잘려나간 장면 영문을 모르는 표정 너는 너를 구원할 수 없는 구원자
너는 죽을 수 있다 그러나 죽을 뿐이다
계간『시로 여는 세상』 2021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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