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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표규현 시인 / 숭어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

표규현 시인 / 숭어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면

어느새 뛰는 놈들

없는 팔다리 휘젓는다

몸 비틀어 올린다

노래 부를 때 뛰어 오르는 가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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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팔다리에 맥이 풀린다

눈이 빠질 지경

혀는 말려들어 단단하다

아가미와 뼈가 툭하고 붉은 통속으로 떨어진다

눈들은 감지 않았다

숭어가 돌아 왔다

 

 


 

 

표규현 시인 / 망령

 

 

깊은 곳에서 머리카락을 풀어 헤치고 올라온다

 

배고프고 외롭고 서러워서 온다 산책하는 이의 뒤를 따른다 휘파람을 분다 이름을 부른다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 검은 안개 그루터기에 기대어 있다 깊게 꺼진 눈구멍으로 바라본다 흐물거리며 웃는다

 

방문 앞에 서 있다 잊지 말라고 흐느낀다 죽은 피를 짜내듯이 운다 갈 곳이 없다고 한다

 

폐지 더미를 끌고 간다 골판지를 깔고 잔다 들리지 않게 중얼거린다 몸을 뒤틀며 오그라진다

 

가던 길을 잃고 넘어져 이마를 깨뜨린다 눈동자가 점차 흐려진다 기억이 죽어버린 집 사진 속에서 얼굴 뒤를 하얗게 넘겨다 보고 있다

 

뒷간 문짝을 두드린다 찬장 문을 드르륵 하고 연다 주섬주섬 장롱을 뒤진다 같이 가자고 손을 내민다 다리가 없고 잘 보면 그림자가 없다

 

우물 속으로 흰 머리카락 들어간다

 

 


 

 

표규현 시인 / 막장

 

 

 회오리에 탄 가루가 날립니다 검은 무궁화가 꽃을 피웠습니다 술잔이 돌고 붕어들이 어둡게 입을 뻐끔거립니다 남자들은 나도 꽃을 피 고 싶다고들 하면서 막힌 구멍을 찾아 들어갑니다 검은 운동장에 비가 내리면 마을도 시커멓게 흘러갑니다 교문 앞에서 검은 콧물을 흘리며 아이가 엄마를 기다립니다 와이셔츠 소매가 검은 선생이 아이를 배웅 합니다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을 꿀꺽거리고 마시면 가랑이 사이를 흐르는 검은 땀이 됩니다 곡괭이가 휘청하고 꽂히면 석탄이 울컥하고 쏟아집니다 소리는 없고 눈빛만 있습니다 빛의 반대로 자꾸만 가세요 깊은 곳에서 빛을 뿜어대는 검은 태양을 보세요 고약 덩어리가 엉겨 붙 는 어두운 꽃이 무더기로 핍니다 처자식의 심장을 파듯 무덤을 팝니다

 

 


 

표규현 시인

1955년 경기도 남양주시서 출생. 1997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 석사 취득. 2017년 계간 《창작 21》 겨울호 신인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