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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미산 시인 / 부푼 말이 달콤해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

박미산 시인 / 부푼 말이 달콤해

 

 

말을 부수고 섞어서 반죽을 한다

부풀어 오르다 튀어나온다

말 하나,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발 없는 말을 타고 달린다

윗말 아랫말에

말 둘,

말은 입 안 가득 냄새를 풍기며

한참을 짓이기다 쪼아 먹곤

더욱 더 탱탱해진 말을

주둥이로 물고 다시 달린다

말 셋,

따끈따끈한 말을 코앞에 흔들며

꿈쩍 않으려는 입마저도

툭 툭 건드리며 호출한다

말 넷,

다시 반죽 한다

더 커진 말

더 달콤해진 말

말들이 한꺼번에 삼킨다

주둥이들이 쏟아진다

소리보다 앞서 말이 말처럼 뛴다

 

 


 

 

박미산 시인 / 세신목욕탕

 

 

허리 굽은 그녀가

탕 안으로 들어온다

자글자글 물주름이 인다

목만 내밀고 있던 여자가 묻는다

몇 살이슈?

여든 일곱이유

난 아흔 둘이여

잘 익은 살갗을 열어젖히며 목청을 뽑는다

얼굴이 뽀얀 아주머니가 조그맣게 말한다

난 일흔 여덟이에요

요새 일흔이면 새각씨여

벌거벗은 마음들이 넘치면서

물주름이 좍 펴진다

살빛으로 물든 탕 안에

늙은 발목들이 조그맣다

퐁당 퐁당 말장구 치는

여자들이 다시 태어난다

배가 불룩한 탕 안에서

조글쪼글한 신생아로,

 

 


 

박미산 시인

1954년 인천에서 출생. (본명: .明玉). 방송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2006년 <유심> 신인상. 200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너와집〉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루낭의 지도』, 『태양의 혀』, 현재 고려대, 방송대, 서울디지털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