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순 시인 / 봄쑥처럼
쑥은 봄웃음이다 겨우내 움추렸던 땅에게 이를 드러내며 웃어주고 땅을 밟는 사람에게도 활짝 웃어준다
보송보송한 솜털로 땅도 간지럽히고 쑥 뜯는 사람의 손바닥도 간지럽히며 향기로움까지 얹어 봄바람도 웃긴다
누가 쑥대밭이라 했지? 누가 쑥스럽다고 했지?
잡초들도 아직 덜 깨어난 이른 봄 쑥들이 예서제서 웃는 법을 가르친다.
쑥무리로 쑥절편으로 쑥찜으로 수천 년 받들어온 힘을 모아 주는 법을 가르친다
흐뭇한 미소 전수 받고 쪼그리고 앉아 가장 먼저 핀 쑥 밑동을 똑 따도 그저 하얗게 웃고 있는
봄 쑥!
―『문학과창작』 2011년 여름호
황경순 시인 / 나는 오늘, 바닷물이 되었다
해수관음을 보는 순간, 나는 바닷물이 되었다
물고기 떼와 함께 해수관음을 향해 흘러간다 그의 손길이 미치는 곳마다 물고기들의 팔딱거리는 아가미 속에서 내가 살아 있음이 느껴지고 몸을 스치는 해초들의 부드러운 감촉에 몸을 맡겨도 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져도그 관능, 그 아픔을 이기며 나를 채찍질 한다 그 눈길이 미치는 곳마다 들어가는 이. 나오는 이 가슴 속에서 기나긴 행렬을 벗어나 해탈의 미로를 순식간에 빠져 나간다
나는 오늘, 일몰 따라 밀려오는 해수관음의 붉게 단장된 넓은 품에 나를 맡기며 드디어 나를 온전히 멈추었다
나는 오늘, 바닷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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