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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영운 시인 / 저녁 오는 소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4.

정영운 시인 / 저녁 오는 소리

 

 

바람은 바람의 말로 사람의 마을을

흔들고 가네

나무의 말들은 잎새 접고 있는 자귀나무 가지 위에

조곤조곤 떨어지네

세상의 그늘들은 그늘을 덧대 어둠이

누울 자리를 만드네

누군가는 경건한 의식같은 하품을 끝내고

창문을 닫아거네

 

멀리 침묵처럼 닫히는 수평선

 

땅거미지는 마을에 도착해서야

마음 놓고 달맞이 꽃들을 피워내는

저녁 전령

두드려 보지도 않고 건너던 돌다리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맨발

그 시려운 발을 데리고

그가 돌아오는 소리

 

-2011년 <현대시학> 1월호 소시집에서-

 

 


 

 

정영운 시인 / 낭창낭창

 

 

단단히 말뚝을 박고 줄을 건 다음

당기고 밀어내기를 반복하며 줄을 조율하던

어름사니 권원태는, 줄 위에서 걷기를 반복하며

테스트하고 있던 제자에게 한마디 하였다

"출이 너무 밭아도 느슨해도 안 된다"

"그래, 낭창낭창하냐?"

 

낭창낭창 잘 조율된 줄 위에서

남사당패 권원태의 제자인 두 청년은

사뿐사뿐 걸어 다니다가 때로는 솟구쳤다가

가볍게 착지하면서 깊고 푸른 하늘을 마치

새처럼 자유롭게 혹은 신명나게 부리면서

어름사니가 되는 신고식을 무사히 치러내었다

 

오늘은 한 번 네가 나에게 길을 물어라

"서툰 솜씨로 상모 돌리며 가는 네 길도 낭창낭창한 가?"

"가끔은 그러한가?"

 

 


 

정영운 시인

충남 공주에서 출생. 1994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나와 그의 거리에 대하여』(1997) 『딴청 피우는 여자』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