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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현솔 시인 / 계절을 건너가는 것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9.

박현솔 시인 / 계절을 건너가는 것

 

 

눈덩이를 굴리고 있는 나를 보는 너의 두 눈

내가 발 디디고 있는 이곳이 바로 야생이구나

빗소리가 사방에서 조여 오면 금세 비에 갇히고

눈 오는 소리가 멀리 피어날 때 눈에 갇히고

바람이 꼬리를 잘라내고 사라지면 바람에 갇히고

햇빛 퍼지는 소리가 느긋하면 햇빛에 갇히고

우박 소리가 심장에서 들릴 대 우박에 갇히고

창을 칭칭 동여맨 저녁 때문에 안개에 갇히고

갇히지 않고서는 다른 방도가 없는 이치

갇히다 보면 자유로워지기도 하는 순리

세상의 도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깨우치는 날들

눈사람의 두 눈과 코와 입이 슬쩍 들러붙는 날들

 

(『열린시학』 2021년 가을호)

 

 


 

박현솔 시인

1971년 제주에서 출생.  동국대 대학원 문창과 졸업. 아주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1999년 《한라일보》 신춘문예와 2001년 《현대시》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달의 영토』(문학사상사, 2006)가 있음. 2005년 한국문예진흥기금 수혜.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한국시인협회 회원이며 아주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