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종 시인 / 좌뇌형 인간 우뇌형 인간
좌측통행이 세상의 진리라고 늘 한쪽으로만 다니다가 척추 측만증이 생길 즈음 세상의 등뼈는 조용히 우측으로 바뀌었다 우측통행만이 공평하게 자리를 내주고 무사히 속도를 줄일 수 있다고
나는 늘 바른 사나이라고 외치고 다니지만 심장은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 바른 손으로 밥을 먹고 글씨를 쓰고 남은 소변을 털어 내지만 왼쪽을 능멸하는데 가장 익숙하게 사용되었다
견고한 두개골 속 뉴런들도 장벽을 허물어야 좌우 소통이 된다 푸른 시냅스에 붉은 등이 켜지면서 대뇌피질의 주름은 더욱 깊어졌다 버스노선보다도 더 희미해진 내 이념의 중앙 분리선 아직도 헷갈리는 내비게이션을 따라 가만히 페달을 밟는다
황색등에 갇혀버린 내 언어는 여전히 안개등처럼 깜박거리고
김연종 시인 / 간에 기별하다
벼룩시장의 정보를 취합하여 네 징후를 포착한다 몸속의 소식들은 언제나 한발 늦기 마련이다 진검승부를 펼치기도 전에 몸을 꺾어버리는 너의 비겁함을 술잔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단기기억은 해마가 관장하고 장기기억은 대뇌피질이 저장한다지만 술 취한 너에 관한 기억이라면 씁쓸한 입술과 어리석은 간뿐이다 인생에서 승부란 늘 뻔한 이치다 목소리 센 놈이 일견 유리해 보이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취하게 하는 자가 해마 속에 파고들고 누군가의 마음을 섞는 자만이 대뇌피질에 자리 잡는 것이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도 누구와도 마음 섞지 못하고 세상을 향해 헛구역질만 해대는 멍청한 간이여,
내 술이나 한 잔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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