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춘희 시인 / 모래라는 빛
빛은 싸울 때 생긴다 구기고 싶은 의지는 별이 되었다
짠물을 뱉으며 복서가 뛴다 검은 바다를 벗어나 복서가 뛴다
우리는 입이 없는 작은 벌레 나약한 병사 부러진 의자에 묶인 연처럼 깊은 잠을 청할 줄 모른다
불분명하게 말라가는 어제의 뱀처럼 당신과 나는 젖은 모래를 파고든다
봤어? 못봤어...
삼킬 수 없는 것을 삼킨 얼굴로 마주보았지
모래를 따라 모래 끝까지 발이 빠졌지
오래... 가능한... 싸우자... 드러나지 않은 밤에 집중하는
이곳의 나무처럼
르르르르 한 세기를 그으며 우는 유성처럼
서춘희 시인 / 위생
기본적인 저녁마다 머리와 꼬리를 잃고 나란히 포크를 든다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시곗바늘의 끝, 누군가 한 말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드러나는 부분을 래핑한다. 대체로 신선한 상태의 빛이 닿기도 한다. 전염되기 쉬운 신(神)의 손목은 꺾인다. 반문 없이 증가하는 기포처럼. 우리는 가볍다. 매일 개명하고 살갖은 흰 벽을 따 라 이동 이동...
목에 걸린 알약이 녹는 동안, 그림자가 연거푸 물을 마신다. 먼지를 빨아들이는 대기는 점점 팽창한다. 매캐하게 노란 꽃이 벌어진다. 가까운 소각장을 떠올렸다.
비는 반복적이다. 반복해야 할 것들을 뱉는다. 집행관은 표정이 없다. 눈동자가 까맣게 흘러내리는 벽화, 비처럼 서서 빗물로 양치질을 했다.
보글보글 웃는 연습을 한다. 신속하게 비워진다. 슬픔이나 반성 따위를 지릴지 모른다. 닦아서 쓸 수 있는 손이 있다는 것, 안도는 어디까지 안도인가.
우리는 바람이 될 수 없다. 규정할 수 없는 촉감은 잊기로 했다.
-《시인동네》(2017,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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