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이승예 시인 / 모퉁이에 새가 산다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0.

이승예 시인 / 모퉁이에 새가 산다

 

 

시골집에 내려와 짐을 푼다

어제 싸 온 도시가

우루루 쏟아져 나온다

 

창고 문을 열기 위해 모퉁이에 걸린

거미줄의 기호에 홍채를 맞춘다

문이 열린다

 

​잔디 깎는 요란한 소리를 밀어내는가

풀잎 사이를 사색하던 뱀이 돌아가고

마당은 다시 잔디를 키우는 자세로

뱀을 기다린다

 

​굳이 모퉁이라 불리는 것은

목숨을 끌어안고

홍채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오늘도 이 모퉁이

수국이파리 사이는 새들의 성지

 

​​사방이 뻐꾸기 울음으로 가득한데

수천만 번 드나들어 틀었을

저 둥지는 텃새의 소유다

 

며칠 후

붉은 머리 오목눈이가

부화 되면 새끼가 다섯 마리여야 한다

 

목숨이 잉태한 날개가

모퉁이의 역사가 되기까지

다시 거미줄에 눈을 맞춰

알 고리즘을 채운다

 

품었던 알이 뻐꾸기알일 리 없다

불편한 텃새가 엉덩이를 돌리는가

 

수국이 피다가 휘청한다

 

(『문학청춘』 2021년 가을호)

 

 


 

이승예 시인

​1963년 순천에서 출생. 2015년 계간 <발견> 봄호로 등단. 시집으로 『나이스 데이』, 『언제 밥이나 한 번 먹어요』가 있음. 2020 문학 나눔 선정. 제5회 김광협문학상 수상. 선경해시문학회 회원. 현재 계간 <발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