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덕 시인 / 모르는 사이
누가 오지 않아도 밤은 깊어간다.
어둠에 압도당한 불빛, 밤은 깊이 웅크린 것들을 되살린다지만 아무 데나 가 걸리는 마음은 가변성 (可變性) 좋은 병(病)일 뿐, 계절은 저절로 돌아오고 모든 봄꽃은 자기(自己)의 완성을 위해 핀다. 예전에 도, 아마 영원히 그럴 것이다.
얼얼한 손끝으로 검은 자판을 두드리며 먼 대륙, 찟긴 나라와 사람을 말하고 싶지만 거리(距離)는 거리에서 가늠될 뿐, 골목 안에서 우는 고양이 털빛이 한밤의 모든 생각을 뒤집는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허기일까, 춘정(春情)의 시작일까, 잘못 든 길의 단순한 공포일지도 모른다.
누가 오지 않아도 저절로 깊어가는 밤은 낮은 곳에서부터 웬 고양이 울음에 찟길 것이다. 모르는 사이, 매장(理葬)의 긴 행렬이 폐허를 수놓고 들뜬 상춘객 얼굴 달린 꽃잎보다 넘쳐도 더는 상상하지 않는다. 그저 모르는 사이일 뿐.
백인덕 시인 / 여전히 낯선 세계와 꽃말들
어제는 비 그제는 비, 그끄제도 비 셀 수 없이 많은 비가 내리고 한 뼘만 한 우산을 눈썹에 걸고 쏘다녔다.
비는 눈으로 맞는 것, 보지 않으면 젖지 않는다.
어제 읽은 시 그게 읽은 시, 그리고 먼 옛날부터 나를 앓게 한 무수한 시 세계가 구르는 소리는 귀를 닫아야 들린다
자기는 마차를 타고 나는 무릎으로 걷는다.
어제 온 시집 그제 온 시집 그게 온 시집 앞에서 손톱 밑에 가시가 자라고 어두운 살갗을 파고드는 구원은 영 틀린 이름
어제 피운 시가6 그제 피운 말보로 미디엄 그제 피운 카멜 블루 파랗게 붉게 검게 내 폐는 돈을 먹고 죽음을 키운다.
오늘도 여전히 낯선 세계와 꽃말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승우 시인 / 길 외 5편 (0) | 2022.08.11 |
---|---|
용혜원 시인 / 벚꽃 피던 날 외 3편 (0) | 2022.08.10 |
홍석영 시인 / 나는 지금도 공사 중 외 2편 (0) | 2022.08.10 |
박금성 시인 / 뼈다귀 외 2편 (0) | 2022.08.10 |
조병완 시인 / 창가에서 외 1편 (0) | 2022.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