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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금성 시인 / 뼈다귀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0.

박금성 시인 / 뼈다귀

 

 

어미 개가 자신의 머리만 한 뼈다귀를 물고

나타났다

이틀 만에 나타났다

 

어미 개가 뼈다귀를 입에 꼭 물고 있다

강아지들 앞에서 턱을 쭉 빼고 입 끝을 오므리고

 

뼈다귀가 느리게 나온다

어미 개의 입에서

거북이 몸에서 머리가 나오듯

느리고 근엄하게

 

둥글게 앉은 강아지들이 뼈다귀 모서리를

갉아먹는다

어미 개가 뼈다귀를 바라본다 귀 끝을 내려뜨리고

수녀가 십자가를 바라보듯

여승이 관음을 바라보듯

모서리 뜯기는 뼈다귀를 바라본다

강아지들의 입안에서 달각달각 비명을 지르는 뼈다귀

 

어미 개가 느리게 일어난다

뼈다귀에 입이 붙은 강아지들을 보면서

어미 개가 왔던 길로 내려간다

새끼들을 돌아보며 내려간다 꼬리를 눕히고 내려간다

 

뼈다귀에 입이 붙은 강아지들이

뼈다귀 속으로 머리를 밀어 넣는다

온몸을 구겨 넣는다

 

(『불교문예』2021년 가을호)

 

 


 

 

박금성 시인 / 같은 냄새

 

 

해 갓 넘어간 부춘산 산사 카페 앞

일 미터 앞에 마주 선 몰티즈 두 녀석이

눈을 옆으로 살짝 치켜뜨고 서로 탐색을 한다

 

반쯤 감은 눈으로 깊이 바라보는 두 녀석

네 발을 빳빳이 땅에 박고 코를 벌름거린다

 

한 녀석이 한발 내디디면

한 녀석은 한발 물러나고

한 녀석이 한발 물러나면

한 녀석은 한발 내디디고

 

한 녀석이 혀를 길게 뽑고

몸을 세워 헛발질을 하자

한 녀석은 땅에 몸을 바짝 붙여

주둥이를 쭉 빼고 앞발에 올려놓는다

 

저 녀석에게서 같은 냄새가

저 녀석에게서 같은 주둥이가

 

줄이 느슨해지고

두 녀석이 돌고 돌며 서로의 몸 냄새를 맡는다

냄새에 취한 듯 킁킁거리며 떨어질 줄 모르는…

 

두 남녀가 말을 한다

남자는 피자가 제일 맛있는 곳을

여자는 닭발이 제일 맛있는 곳을

 

줄에 끌려 멀어지는 두 녀석

같은 냄새를 맡을 수 없는 거리

두 녀석이 서로를 향해 사납게 짖는다, 혀를 쏟아 낼 것처럼

눈에 눈곱을 잔뜩 달고

 

 


 

 

박금성 시인 / 입소리

 

 

두 달 넘도록 내 손으로 먹이 준

숲속 어미 들개와 강아지들

 

이제 빗자루 들어 몰아낸다

훠이 훠이 몰아낸다

신발이 벗겨지도록 발 구르며 멀리 쫓아낸다

 

사료를 줘도 쓰레기 뒤져 먹고

동네 개밥 죄다 훔쳐 먹던 어미 들개

닭을 물어 피를 핥아 먹고도

젖가슴 바짝 말라붙어 갈비뼈만 보이던 어미 들개

어린 개들이 어미를 따라 피를 핥아 먹었다

 

사람에게 꼬리 흔들 줄 모르고

돼지갈비 앞에서도 귀 접어 내릴 줄 모르는

어미 들개와 새끼들

 

임시 동물원 보호 기간 십오일, 그러나

순한 얼굴 할 줄 모르는 어미 들개는

꼬리 흔들 줄 모르는 강아지들은

선택받지 못할 아이들은

 

채소밭 허물어진 담장

쓰레기통 주변

하나둘 늘어나는 포획 틀

 

타이어 조각 같은 육포를 입천장에 매달아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포획 틀

 

내 손으로 먹이 주던 어린 개들을

빗자루 들어 멀리 몰아낸다

털이 납작 눕도록 어미를 따라 달아나는 새끼들

골목 모서리에 꼬리 잘리며 허겁지겁 달아나는 어린 것들

 

장독대 항아리 골처럼 휑한 골목

빗자루 들어 훠이 훠이

입소리를 낸다, 크고 길게 뱉어낸다

 

 


 

박금성 시인

1963년 충남 아산 출생.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도신승려, 서광사 주지. 2020년 계간 《서정시학 》 등단. 충남 시인협회상 수상. 수덕사 성보박물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