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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임곤택 시인 / 대흥사 가는 길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2.

임곤택 시인 / 대흥사 가는 길

 

 

숲에서 나온 길이 나를 앞질러

동백 사이로 사라지고 있었다

뼈를 묻을 곳을 찾는 늙은 동물처럼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쉼이 없었다

저 너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산 그림자와 함께 산을 넘은 바람은 숲에 머물고

알 수 없는

사실 조금은 알 듯도 한 무엇을 보았던지

상기된 꽃잎들이 연이어 숲을 나오고

나를 보더니 흠칫 놀라며 총총히 길을 건넜다

나무들이 울부짖듯 노래를 부르고

위태롭게 펄떡이던 잎들 위로

오랫동안 공중을 떠돌았을 시퍼런 영혼들이

막 새 몸을 얻어 힘겹게 반짝이고 있었다

모든 것은 명백해 보였다

동백숲으로 사라진 길은 돌아 보지 않았고

동백꽃만 검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 2004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

 

 


 

 

임곤택 시인 / 밤의 북벌

 

 

軍馬를 끌고 간다

밤은 푸르지 않고 가계의 우울처럼 한 번 오면

밤새 돌아가지 않는다

말은 슬픔을 걸음으로 바꿀 수 있다

가족의 쪽잠 사이로 하품 사이로 번지던 것

밑도 끝도 없이 전진

 

통로에 선 외국인들의 낯선 말

노동자들이 거의 분명한

그들은 보드랍고 강인하게 스, 크, 발음하고 있다

초원의 바람을 닮은 유-

구름을 보고 누운 청년의 입술에 루-

양떼와 소떼 지나는 진흙길의 추-

 

밤기차를 타면 떠오르는 목포행

목포행을 타면 반드시 만나는 아버지

다음 날의 선창과 썩은 내장들

 

가장 빠른 말은 어떤 색이었을까

가장 오래 달리는 말은

두리번거려도 두려움 없는 저들은

멀리 달려온 뒤에는

어떤 물소리 듣고 개울을 찾아냈을까

 

열한 시 넘은 역에는 선 사람, 기댄 사람, 기대고 조는 사람

불빛은 기차의 창을 비춘다 그보다

더 자세한 달빛

초원과 구름과 軍馬와 졸음들 뒤섞인 밤의 북벌

잠깐 멈춘 역에서

말들은 어떤 풀을 뜯었을까

 

 


 

임곤택 시인

전남 나주에서 출생.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2004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으로 『지상의 하루』(문예중앙, 2012)와 『너는 나와 모르는 저녁』(문예중앙, 2017)과 시론서 『현대시와 미디어』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