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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병휘 시인 / 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4.

김병휘 시인 / 껌

 

 

들녘에 날아드는 나는 파랑새다

아버지는 읍내 병원에 가시고

이슬이 마르지 않는 이른 아침

돌아오는 길에 싸리꽃 몇 송이 꺾어온다

질그릇 항아리에 싸리꽃을 꽂아두고

상경하는 고속버스,

하루 종일 담근 김치냄새

고춧가루에 손이 아리고 양파에 눈시리고

버스 안에서 아린 냄새 지우며 씹는 껌

처방전을 들여다보며

아차! 아차! 씹는 껌

차창에 내 눈망울을 올려놓고

갯벌 같은 터미널에는

비라도 쏟아질 것 같은데.

다시 씹는 아버지의 파랑새

아버지의 삼강오륜을 씹고 아버지의 검버섯을 씹고

아버지의 다랑논을 씹고

큰 소리로 짹짹거리며 풋나락 하얀 뜨물을 빤다

매운 김치 드시고 계실 아버지

단물 빠진 아버지의 껌이 조용하다

 

-시문학 5월호

 

 


 

 

김병휘 시인 / 상사초

 

 

기다리다 기다리다 빨갛게 타버린 꽃

오솔길 옆 창가에 꽃이 되어 피어도

그대 어깨 잎이 되어도

그대를 만날 수 없네 만날 수 없네

그리움은 몇 겁의 겨울로 살아야

다정히 함께 웃음 피는 꽃잎이 될까

 

기다리다 기다리다 노랗게 녹아내린 잎

도솔천에 쓸려가 구름 되어 흘러도

그대 머릿결 곁에 바람으로 날려도

그대를 만날 수 없네 만날 수 없네

빗물은 얼마나 가슴을 적셔야

햇살 속에 웃음짓는 꽃잎이 될까

 

 


 

김병휘 시인

전북 고창 출생. 2005년 《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사과여행』이 있음. 대한민국 창작미술대전 우수상 수상. 서울국제미술박람회 초대작가. 현재 유명산 숲학교 교사. 전통문화 해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