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수 시인 / 새우의 눈
알고 있니? 순대국집에서 새우젓을 젓가락으로 집어 올릴 때 새우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는 거
생각해 보았니? 깍두기 조각과 순대를 허기진 이빨로 잘근잘근 씹는 동안 새우가 두 눈 또렷이 뜨고 꼬리 한번 치지 않았다는 거
본적 있니? 너의 푸념과 한탄 일일이 다 들어주고 네가 기어서 빠져나온 도시의 밑바닥 같은 서해 갯벌 짜디짠 소금에 절어 세상 모든 게 다 작아지더라도 결코 작지 않는 마침표 하나
상상해 보았니? 네 쓰라린 속 다 들여다 봐주고 그 속 훌훌 다 풀어주고 말똥말똥 다시 돌아가는 먼 바다의 내시경을
권혁수 시인 / 보수공사 중
싸늘하게 맑은 초겨울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보수공사 중 온 몸뚱이가 뿌리 없는 나무 등걸 같다 창문엔 커튼이 쳐져 한낮에도 생각이 어둡다
커튼을 걷고 안경 유리를 닦아보고 둑이 무너진 뱃살에 지방을 제거하고 얼굴 주름에 보톡스를 주사하고 백발을 파마한 후 염색하고 구멍 난 뼈 마디마디마다 시멘트를 부어본다
시멘트가 마르려면 달포가 걸린다 애초 시방서에 누락된 것은 없다 시공이 게으를 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 난감하다
보수공사는 비가 와도 멈추지 못한다 그러나 언젠가 중단될 것이다 나 모르게 휴식 시간이 너무 길어 완성하지 못한 나의 하루가 비어간다
어둠이 하늘을 가려준다 닫힌 창문 틈으로 반달이 보수공사장을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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