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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하율 시인 / 시래기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26.

이하율 시인 / 시래기

 

 

몰락하는 계절의 이층離層은 숨차다

시인은 많은데 시가 그립다는

어느 시인의 토로를 뒤적여본다

음풍 소란한 시월 끄트머리 날,

시인들 상기된 눈빛이

창밖 단풍이파리로 흔들리다 떨어진다

우수수, 기형의 시들로 치부되다 죽을까

잎들이 분을 덮는다

죽어서도 죽지 못할 것들로 분분하다

식탁마다 허기진 시인들 이목이

그을려 토막 낸 검은 오리를 오독오독 씹는 사이

일산화탄소는 고이다 어디로 가나

이층의 젖은 발코니에 줄지어 걸린 무청들

하늘로 고개 쳐들고 뻐금 거리고 있다

저들도 말을 내걸고 있는 것이리라

빗물이 해독하고 있다

질근질근 씹을수록 우러나는

팽팽한 줄거리의 힘을 맛본다

부들부들 난간에 널려 얻은 장력이다

터질 듯 팽창한 시간을 걸치고 시속을 낸다

깊어지는 밤의 영역,

길가에 한낱 파편으로 비켜 있던 혼돈들이

낯설어 외려 시적인, 탄생의 혀로 돌아와

시닢시닢 진술을 엮을 것이다

숨찬 계절 이층에 도사린 허,

덖은 시래기로 풀어본다

 

 


 

 

이하율 시인 / 해바라기 우화

 

 

태양만 보고 살겠다고

금빛 머리칼 흔들던 해바라기가

꽉 다문 속내를 터뜨린다

사계의 해 길이를 해독하다

해 꼬리를 잘라먹던 혀가 타들어갔다

 

헬리안투스*가 헤엄쳐 오를 물관을 지키겠다고

억센 털가시를 빽빽 두르고 어긋난 양팔은

톱니로 무장한 보초병

칸칸 수백 개의 쪽방을 지어

해바라기 머릿결을 가진 물고기에게 세 놓았다

 

방마다 알을 슬어

꽃 속에 꽃을 키우는 물고기들,

그도 한 철,

여문 씨앗들 젖비늘을 걷고 튀어나갈라

(굵)헬리안투스 헬리안투스(굵)

흑점 같은 주술을 왼다

 

해바라기는 헬리안투스와 한통속

외계에서 왔을지도 모른다

 

눈곱보다 짧았던 황금빛이 어두워질까

일제히 태를 벗고 해를 향해 솟구치는

발색 물고기들,

바짝 마른 물관마저 달빛에 털릴까

이파리도 오그라들었다

 

그의 전부는

몸보다 무거운 머리 하나

 

누가 저 목을 꺾으러 올까

 

* Surflower의 속명이며, 해바라기라는 속명을 지닌 황금빛 발색 열대어

 

- 두레문학 2015년 하반기 초대시

 

 


 

이하율 시인

충남 홍성에서 출생. 2011년 ≪詩로 여는 세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