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천 시인 / 허들
바닥을 다지던 시간들이 여름 강물처럼 흐르고 출발선에 선다 중력에 짓눌릴 때마다 몸 안에 속도를 내는 전사들 끝없는 물음을 품고 달리는 정신의 높이 밑면이 높을수록 높아지는 꼭짓점 내부에 겹겹이 도사린 장애물을 뛰어 넘어 도주한다 도약은 더 이상 뛸 수 없이 기진 했을 때 온다 올려다보며 올려다보며 수없이 발돋음 하던 높이 표상에 갇히지 않는 살아있는 속도로 선반을 뛰어 넘어 부드럽게 착지하는 고양이 두눈에 펼쳐진 푸른 초원에 맺힌 이슬
김혜천 시인 / 풀에 대한 에스키스
누가 그를 잡풀이라 하는가
그것은 네가 그에게 붙인 어이없는 이름 일 뿐 그는 건기에 사막을 이겨낸 불꽃 쓰나미를 건너온 풀꽃
탈출을 위해 동냥하지 않는다 밖에서 오는 것들은 모두 동냥이므로 수없이 발목을 잡던 몸 안에 동냥치를 몰아낸다
그는 생존을 위해 벽을 넘어야 하는 전쟁기계 끝없이 벽과 벽 사이 틈새로 스스로를 전염시키듯 뻗어 나간다
유목민은 적을 향해 당기는 화살촉에 보석을 달듯 낭비를 멈추지 않는다
온 힘을 다해 담아내는 푸른 하늘로 밀도를 만들고 공간을 점유하면서 풀꽃을 피운다
차가운 금속성의 세계에서 아무도 그의 공간을 포획하지 못하도로 연금술사의 망치소리와 함께 깊숙한 공감을 이끌어 내는 물음과 함께
김혜천 시인 / 몽상가의 턱
인사동 골목길을 걷다가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무릎 위에 포갠 두 손 위에 비스듬히 턱을 괸 몽중사유좌상을 모셔왔다
몽상은 오직 한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뇌에 자극을 주어 유연하게 한다. 굳어버린 일상속에서 저 너머를 바라보는 새, 매의 세계를 보게 한다
간단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넘어 내 창에 걸터앉은 그대여
나를 바람되게 하여 산을 날게하고 바다를 걷게 하고 달을 베어 먹기도 하고 솔처럼 푸르게 하고 꽃이파리와 입맞춤 하게 하고
고뇌하고 절망하였다가 다시 살아 시공을 넘나들어 새로운 우주를 도모하게 하면서 몽중에도 찾아와 내 영혼을 깨우는 그대여
나 이제 사는 날까지 그대 맞는 마중물, 자리끼 놓아두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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