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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인자 시인 / 인연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1.

이인자 시인 / 인연

 

 

사랑하는 사람아!

살랑이는 바람타고 배시시

얼굴 붉히며 간질어하는 어린웃음으로

내 품에 들어오는가?

태고의 인연이 아닌, 천상의 연으로

 

사랑하는 사람아!

그대를 한 여름 뜨거운 태양

정열적 뜨거운 사랑으로 내 품에 들어오는가

거침없는 소낙비처럼 굳을 돌처럼 천상의연으로

 

사랑하는 사람아!

지난시간 아쉬워 그리며

홀로 선 나무처럼

아픔도 화려함도 뒤로 한 채 내 품에 들어오는가

바람 타고 흙으로 돌아갈 마음으로 천상의 연으로

 

사랑하는 사람아!

그대는 겨울아이처럼 눈송이 날리며

내품에 들어오는가

흐트러짐에 불같은 정열도 다 사위어 버린 채

지친 둘이 아닌 하나가 되고픈 천상의 연으로

 

 


 

 

이인자 시인 / 봄날의 일기예보

 

 

내일의 일기예보에서 봄비가 내린다

 

매일 일기예보를 듣는다는 것은

늙어가고 있다는 것

속수무책 비를 맞으면 몸이 먼저 아프거나

대륙의 모래가 반도를 덮는 날

마스크 없이 거리를 활보 할 수 없다는 것

알고 있다. 봄비가 온다고 해도

반드시 온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도 우산을 준비하는 것은

올 것이라 반쯤 믿는 것은

틀리거나 맞거나

일단 한번 태어나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어긋난 일기(日記)와 닮았기 때문이다

 

동해 먼바다 물결은

2.0m~4.0m의 물결로 높다 점차 낮아진다

고깃배 몇 척을 흔드는 풍랑

매몰차게 걷어차이는 섬바위

동해 먼바다는 몇 해리쯤일까

대륙의 고기압은 언제쯤 동해 먼바다에 닿아

물결을 낮아지게 할 것인가

고기압을 만난다고 다 봄날이 아닌 것처럼

착한 남자를 만난다고 착한 삶을 사는 건 아니지

모든 것이 예정인 일기예보처럼

반쯤 맞고 반쯤 틀려도 살아야 하는 나는,

지금 고기압 가장자리를 통과하고 있다

봄날의 일기예보를 듣고 있다

 

 


 

이인자 시인

1973년 서울에서 출생. 199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새의 덧신』(시안, 2012)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