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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용주 시인 / 사물의 그림자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

이용주 시인 / 사물의 그림자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지만 한 곳에 놓이길 바라는 그 사이로 말들이 오가고 외마디 비명처럼 심장이 두근거린다만져지는 건 아무것도 없는침묵 저편엔 소리를 잃고 떠도는 각각의 그림자들문틈으로 새어드는 달빛에 스민 내 눈물 자국잠가도 잠가지지 않는 열쇠 구멍 같은낯선 공간 속으로 누군가의 발소리는 들리고시간의 막다른 끝은 어디인지어둠의 긴 터널을 빠져나가듯 사물들은 말을 잃고시집 속 언어들은 문장 밖으로 버려진다오래된 기억이란 깊은 상처의 다른 말한 줄기 달빛이 사라진 자리에서 사물들의 그림자도 깊어진다나는 살면서 그림자만 주워 담았는지 모른다그림자는 그늘을 만들고 그늘은 어둠을 만들고 침묵을 가른 오해의 오해가 밤의 아궁이로 들어간다 소멸이 오기 전 그림자는 마지막까지 사물과 동행해준다

 

계간 『시산맥』 2021년 겨울호 발표

 

 


 

 

이용주 시인 / roll blind

 

 

바람이 부는 대로 허공을 빚어

땅속 깊이 불빛을 불러온다

 

구름이 흩어지는 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눈물의 바깥세상을 들여다본다

 

나는 언제까지

너의 마지막 그림이 차짱 밖 야경으로 남겨질 것인가

 

야경이 밤을 감싸는 동안

바람에 등 대고 소리를 듣는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되어 창을 본다

 

창문이 밤거리로 몰려왔다

잠겨진 창, 등에 달라붙은 벽돌들이

 

깨지지 않는 투명 투성이들

 

울음의 자세를 따라 렌즈가 움직이고

벽돌이 쌓이고 벽돌을 기어 오르고

 

말하지 못함을 말하며

빛의 방향을 따라

가슴에서 가슴까지 흐르도록

 

격월간 『PEN 문학』 2020년 3.4월호 발표

 

 


 

이용주 시인

1961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 2014년 《시와 세계》에 <가면을 벗다〉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으로『가면을 벗다』가 있음. 현재 한국시인협회 회원, 『시와 세계』 사무국장. 국제PEN 서울본부 회원. 한국문인협회 서대문지부 사무국장. 계간 「한국미소문학」 서울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