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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승민 시인 / 하역荷役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3.

신승민 시인 / 하역荷役

 

 

숲은 충동적으로 울었다. 소리가 일생에 머물렀다. 근사한 죽음이 유력 했다. 조각무덤으로 향하는 길목, 참나무 토막이 발끝에 차인다. 토끼들이 콩대를 뜯는다. 시간은 적을 수 없는 우화였다.

 

사랑이 누명이다. 자학처럼 너를 쓰고 버리고, 가시 없는 밤. 소설 속의 행선지. 불치의 어둠이 빈소에 도착했다. 식은 빛에 하나 둘 떨어지는 화환의 잎들. 후생後生으로 흐르는 녹천은 외도를 엿본다.

 

우리는 거울을 상속 받았다. 지친 벼랑 속 한 줄기 동경을 멀리 던진다. 해변가에 놓인 사전에 바느질 흔적이 있다. 덫에 채인 바람이 나를 지나간다. 슬픔의 철자가 틀렸다. 너와 다른 곳에 있었다.

 

미네르바』 2017년 여름호

 

 


 

신승민 시인

1992년 서울에서 출생. 한양대학교 한국언어문학과 졸업. 2015년 《심상》, 《미네르바》로 시 등단, 2016년 《문예바다》로 평론 등단. 시집으로 『죽은 시계를 차는 밤』, 장편소설 『權道, 勢家의 길』, 『主君과 宰相』 등이 있음. 제45회 천마비평상, 제17회 의정부 문학 대상, 제1회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문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