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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은후 시인 / 케플러*, 안녕~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3.

김은후 시인 / 케플러*, 안녕~

 

 

샛별 하나가 내게로 오고 있어요

 

만난다는 것은

별에서 모든 나를 꺼내겠다는 것

내게 향한 송신 장비를 끄겠다는 것

 

부사를 좋아하는 별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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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할 것은 겨우, 라는 부사

 

별들이 양을 셉니다

양 한 마리와 양 두 마리의 간격을 일초라고 설정해요

행성 몇 개와 행성 몇몇 개의 간격도 일초라고 믿지요

어두운 궤도를 한없이 떠도는 것

케플러는 거기를 밤이라고 믿어요

 

가장 최근의 신호는 굿나잇

부족하다는 형용사는 부족하여

우주 부고에는 감정적 품사를 쓰지 않습니다

 

우주 행성 케플러―22b에는 구름이 있고

양을 다르게 세는 별들이 있을 거라는 후문이 있습니다

이 별에서는 이별이 제외될까요

 

*2009~2018년 활동한 우주망원경.

 

 


 

 

김은후 시인 / 유성우를 기다리는 동안

 

 

별사탕을 만들기로 했다

사탕은 어느 쪽을 만져도 반짝거렸다

모서리 사이를 좁히면 별을 만들기는

쉬울 것 같았다

호주머니에 넣을 거야

그는 푸른 별이 좋다고 했다

 

밤비행기는 긴꼬리별을 그렸고

나는 동그란 별을 그렸다

그는 별자리를 만들지 않는 별은

별이 아니라고 했다

꼬리를 끌며 반짝이는 것, 쏟아지기 전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까

 

긴꼬리별은 새 항로로 먼 강을 건너가고

나는 별모양으로 그의 얼굴을 그렸다

색색으로 돌기들이 돋아났다

돌기마다 피어나는 것이

사탕이었다가

사랑이었다가

 

그의 푸른 별 사랑과 내 주머니 별사탕

아무튼 사랑인지

사랑시 청탁이 왔다

낮에 받은 부활절 달걀 끝을 톡톡 두드리고 있다

 

 


 

 

김은후 시인 / 체온을 탐하는 자세

 

 

홍시가 되는 동안을 겨울이라 말하고 싶어

 

악양에서 대봉시가 왔다 물렁해진 하나 꼭지를 따서 쪽, 며칠 있다는 티스푼으로, 며칠 더 있다는 반으로 갈라 가지런히 먹었지

 

며칠은 규칙적으로 세는 것을 잊는 데 넉넉한 시간 쭈그러지는 것과 농익는 것의 차이를 잊은 채 며칠이 더 지났다 잊어버린다는 것은 알콜맛인가봐 삼엄한 추위의 경계를 뚫고 초파리들이 돌아왔어 점점의 취중비행이 박스 안에서 점점 밖으로…

물티슈 한 통으로 겨울을 잘 훔쳐서 내다버렸지

 

그들이 찾는 것은 홍시의 체온

컴퓨터 앞 손등에

안경 끌어올리는 콧등에

아주 입술 근처에도

손사래를 쳐서 막자 자판 사이로 저공비행을 감행한다

모니터 속으로는 들어가지 않아

초파리를 쓰진 못했어

홍시주변만 쓰다

찰싹 뺨을 쳤다, 뺨까지만 쓸까봐.

 -끝-

 

예의란 체온을 탐하는 자세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

 

ㅡ『시현실』(2019, 겨울호)

 

 


 

김은후 시인

경남 통영에서 출생. 한신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석사를 졸업. 2011년 《시인동네》 등단. 한신대 문예창작대학원 석사졸업. 시집으로 『분간 없는 것들』이 있음. 2016년 수원문화재단 문화예술지원금을 수혜, 2017년 상반기 세종도서 문학나눔과 2017년 경기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지원 문학분야에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