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후 시인 / 케플러*, 안녕~
샛별 하나가 내게로 오고 있어요
만난다는 것은 별에서 모든 나를 꺼내겠다는 것 내게 향한 송신 장비를 끄겠다는 것
부사를 좋아하는 별이 있어요 읽은 페이지 남은 페이지 해독할 것은 겨우, 라는 부사
별들이 양을 셉니다 양 한 마리와 양 두 마리의 간격을 일초라고 설정해요 행성 몇 개와 행성 몇몇 개의 간격도 일초라고 믿지요 어두운 궤도를 한없이 떠도는 것 케플러는 거기를 밤이라고 믿어요
가장 최근의 신호는 굿나잇 부족하다는 형용사는 부족하여 우주 부고에는 감정적 품사를 쓰지 않습니다
우주 행성 케플러―22b에는 구름이 있고 양을 다르게 세는 별들이 있을 거라는 후문이 있습니다 이 별에서는 이별이 제외될까요
*2009~2018년 활동한 우주망원경.
김은후 시인 / 유성우를 기다리는 동안
별사탕을 만들기로 했다 사탕은 어느 쪽을 만져도 반짝거렸다 모서리 사이를 좁히면 별을 만들기는 쉬울 것 같았다 호주머니에 넣을 거야 그는 푸른 별이 좋다고 했다
밤비행기는 긴꼬리별을 그렸고 나는 동그란 별을 그렸다 그는 별자리를 만들지 않는 별은 별이 아니라고 했다 꼬리를 끌며 반짝이는 것, 쏟아지기 전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까
긴꼬리별은 새 항로로 먼 강을 건너가고 나는 별모양으로 그의 얼굴을 그렸다 색색으로 돌기들이 돋아났다 돌기마다 피어나는 것이 사탕이었다가 사랑이었다가
그의 푸른 별 사랑과 내 주머니 별사탕 아무튼 사랑인지 사랑시 청탁이 왔다 낮에 받은 부활절 달걀 끝을 톡톡 두드리고 있다
김은후 시인 / 체온을 탐하는 자세
홍시가 되는 동안을 겨울이라 말하고 싶어
악양에서 대봉시가 왔다 물렁해진 하나 꼭지를 따서 쪽, 며칠 있다는 티스푼으로, 며칠 더 있다는 반으로 갈라 가지런히 먹었지
며칠은 규칙적으로 세는 것을 잊는 데 넉넉한 시간 쭈그러지는 것과 농익는 것의 차이를 잊은 채 며칠이 더 지났다 잊어버린다는 것은 알콜맛인가봐 삼엄한 추위의 경계를 뚫고 초파리들이 돌아왔어 점점의 취중비행이 박스 안에서 점점 밖으로… 물티슈 한 통으로 겨울을 잘 훔쳐서 내다버렸지
그들이 찾는 것은 홍시의 체온 컴퓨터 앞 손등에 안경 끌어올리는 콧등에 아주 입술 근처에도 손사래를 쳐서 막자 자판 사이로 저공비행을 감행한다 모니터 속으로는 들어가지 않아 초파리를 쓰진 못했어 홍시주변만 쓰다 찰싹 뺨을 쳤다, 뺨까지만 쓸까봐. -끝-
예의란 체온을 탐하는 자세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
ㅡ『시현실』(2019,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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