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미 시인 / 슈슈
넌 또 울지 물의 끝을 찾으려는 사람처럼 핏줄의 실타래를 엮으려는 몸짓으로 들려? 고개를 갸웃하는 너의 등이 꼭 웃음으로 쌓아 올린 제단 같다 어깨 ― 슬픔에게 허락된 영토에서 너는 웃고 무너지네, 마음을 힘껏 구겨 던지려 의도 없이 체념 없이 심장의 궤적을 들킨 오늘 네가 눈물의 수집가라면 좋겠어 그러면 뒷모습을 모아둔 사람에게서 새것 같은 날개를 얻어올 수 있을 텐데 슈슈, 웃음이든 울음이든 결국은 인간의 계이름일 뿐 의도 없이 체념 없이 거기 있어? 가리키는 손짓이 따듯한 족쇄처럼 느껴질 때 춤추는 것들은 다 어린 신의 장난감이야 알잖아 슈슈, 눈물을 곡이라고 부르는 이유
월간 『현대문학』 2021년 4월호.발표
이혜미 시인 / 달사람
윤달밤 태어난 아이는 보이지 않는 손을 얻는다지
달에도 귀신이 있을까 줄지어 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들을 떠올린다 훔쳐 마신 바닷물에선 달에서 벗겨낸 비늘 냄새가 흥건했고
월출녘에 잠들지 못한 사람들은 달에게서 꿈을 대출하지 잠을 갚지 못한 밤의 창구에서 바다는 분주히 오가고 달빚이 쌓인 사람들은 눈꺼풀이 점차 투명해지네
밤을 저지른 탓에 다 쓰지도 못할 구덩이를 영예로이 짊어지고
달귀신들은 자정의 언저리를 따라 헤매네 잠이라는 다정한 폭력 속
달지옥엔 얼음 털을 가진 짐승들이 돌사막을 걷고 눈(雪)칼과 유리로 짠 그물이 있지
너무 많은 빛들 아직 이른 죄를
눈을 감아도 세계가 환히 보인다면 새로 얻은 손가락을 들어 달을 가리키면 돼 모두가 너의 손짓에 기뻐하지 그건 언제든 흉내내고 싶은 빚이었으니까
월간 『현대문학』 2021년 4월호.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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