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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기형 시인 / 아이가 뛴다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0.

김기형 시인 / 아이가 뛴다

 

 

내가 가는 것처럼

몸 안에 든 기차처럼

숲을 끊어먹으면서

마지막 말부터 허공에 쓰면서

 

사라질 때

‘당신은’을 쓰고

 

나타날 때

‘기운다’고 썼던 것이라면

이제 너처럼 달릴 수 있을까

 

나무의 방향을 가진 머리칼

눈으로 들어와 뒤로 나가는 깃털

조금 지워지면서 조금 선명해지면서

은밀하므로

너는 웃는다

 

이 하늘은 삐뚤고 쏟아질 모서리를 가졌어

가만히 서 있으면 밀려가

 

좋은 풍경이다

 

몸을 담글까

손을 적실까

아이가 집을 지었나

누구의 목이 이렇게 가는가

노래 소리는 왜 이렇게 작은가

 

세상이 다 죽어서 꼼짝 않고 나타나는 곳

아이가 뛰어가

텅 빈 밭으로

자신이 지은 집으로

 

웹진 『시인광장』 2022년 4월호 발표​

 

 


 

김기형 시인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시집으로 『저녁은 넓고 조용해 왜 노래를 부르지 않니』(문학동네, 2021)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