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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송문 시인 / 선풍禪風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0.

황송문 시인 / 선풍禪風

 

 

노을이 물드는 山寺에서

스님과 나는 法談을 한다

 

꽃잎을 걸러 마신 僧房에서

法酒는 나를 꽃피운다

 

스님의 모시옷은 구름으로 떠 있고

나의 넥타이는 번뇌로 꼬여 있다

 

“子女를 몇이나 두셨습니까?"

"舍利를 몇이나 두셨습니까?“

 

"더운데 넥타이를 풀으시죠."

"더워도 풀어서는 안됩니다.“

 

목을 감아 맨 십자가十字架

책임을 풀어 던질 수는 없다

 

내 가정과 국가와 세계

앓고있는 꽃들을 버릴 수는 없다

 

 


 

 

황송문 시인 / 가시나무새

 

 

내 가슴 속에는

피 흘리며 노래하는 새가 있다

 

아플수록 고운 노래

神樂에 사는 새가 있다

 

안일한 둥우리를 떠나

핏빛 노을에 미쳐 날다가

가슴 찔려 피 흘리는 새가 있다

 

아프면 아플수록

삼키는 물음은 아름답고,

포도즙이 노을로 삭아 내리듯

안으로 다스리는 노래는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은

찔리운 가슴에 붕대를 매어 주는

따뜻한 한 편의 詩,

울며 울며 노래로 보내는

구곡간장九曲肝腸의 피울음이다.

 

 


 

 

황송문 시인 / 수채도랑집 바우

 

 

가까이 가지도 않았습니다

탐욕의 불을 켜고

바라본 일도 없습니다

 

전설 속의 나무꾼처럼

옷을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그저

달님도 부끄러워

구름 속으로 숨는 밤

물 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

 

죄가 있다면

그 소리 훔쳐들은 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소리는 꽃잎이 되고 향기가

되었습니다

 

껍질 벗는

수밀도의 향기......

밤하늘엔 女人의 비눗물이 흘러갑니다

 

아씨가 仙女로 목욕하는 밤이면

수채도랑은 온통 별밭이 되어

가슴은 미리내로 출렁이었습니다

 

손목 한 번 잡은 일도 없습니다

얘기 한 번 나눈 적도 없습니다

 

다만 아슴프레한 어둠 저 편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에

정신을 빼앗겼던 탓이올시다

 

시원始原의 유두乳頭같은

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머리카락으로 목덜미로 유방으로 허리로

그리고 또......

곡선의 시야 굼틀굼틀

어루만져 보고 껴안아 보던

그 달콤한 상상의 감주甘酒,

죄가 있다면 이것이 죄올시다

 

전설 속의 나무꾼처럼

옷 하나 감추지도 못한 주제에

죄가 있다면

물소리에 끌려간 죄밖에 없습니다

 

 


 

황송문(黃松文) 시인

1941년 전북 임실 오수 출생. 전주대 국문과를 졸업. 1971년 「문학」지에 시「피뢰침」이 당선돼 등단. 시집 「목화의 계절」「메시아의 손」「조선소」「그리움이 살아서」「노을같이 바람같이」「꽃잎」「까치밥」「연변 백양나무」 소설 「사랑은 먼 내일」「달빛은 파도를 타고」 수필집「그리움의 잔 기다림의 잔」「사랑의 이름으로 바람의 이름으로」논저「문장론」「문장강화」「수필작법」선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