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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류현승 시인 / 신화를 아는 둘레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0.

류현승 시인 / 신화를 아는 둘레

 

 

이 진득한 역치(閾値)*,

태양의 각질에 굴을 파고 알을 낳았다

하루 한 마디씩 낳았다

부화한 것이 안팎으로 덤비는데

그때가 제일 가려워

 

둥그스름하고 납작한 눈을 가진 발칙한 것이

바늘처럼 뾰족한 주둥이는

갈등에서 분노쯤이야, 적출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어, 썩을!

군중의 소리에 낙타 콧구멍처럼 귀를 닫으며, so good!

 

반석 버스정류장에서

물미역 같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다

볼트처럼 새끼손가락을 돌려 귀를 후비다

다리 쫙, 편 불가사리가

- 알고 보면 난 별이었지, so good!

- 아차차! 미끄러져 바다에 빠졌지, 썩을!

 

얼굴에 퇴적하는

이 보랏빛 현미경적 병증,

 

가려워 긁으면 피가 맺히는 옛날

파도가 바위를 삼켰다 뱉었다

긁어 준 몸피가 몽돌이 되어도

이 병에 백신이 없다

 

- 119번 버스가 왔네

- 타자

 

* 어떤 반응이나 현상을 일으키기 위해 필요한 물리량의 최소치.

 

 


 

 

류현승 시인 / 연어처럼 걷다

 

 

생의 고착이다

어머니 뱃살에 닿아온 거스름이다

여우 머리자리 사(死)의 노래 같은 것

 

물살의 호흡은 정연치 않았다

나의 여행길은 비켜설 수없는 종속(從屬)의 행로가 아닌

출렁이는 요동이다

 

그림 속을 걷다

잔가지에 미간 긁히는 일

졸음에 잠시 눈 감았던 탓해라

 

구불-구불

층, 층

서늘한 계단 오르는 두 다리는 버릴 수도 버려서도 아니 되는 까닭이다

충혈 된 한그루 보듬고 “나무야 네 이름이 뭐니?” 묻고

심장 뛰는 소리는 꼬옥 쥐어야 할 일이다

 

붉어진 후

어김없이 흐르거나 내리거나 할 터이니

 

 


 

 

류현승 시인 / 앙그러지게 계면조(界面調)

 

 

저들은 한눈팔지 않고 울어야 제 혼 속으로 들어가나

 

목은 꼿꼿이 일직선으로 하고 코끝만 들여다보는

 

글썽이다, 글썽이다

터트리고 나온 고갱이는

한그루를 봉토로 차지한 제후이다

 

햇살이 은사시나무에 등결림 새기는 오후 3시

그림자 둘 십정공원을 찍어대는 성(聲) 성조(聖祚)를 향해

팔랑귀를

앞으로 두 걸음

옆으로 세 걸음,

손차양하고 쏘는 눈수제비 한방에 이야기 하나 떨어진다

 

요람에서 나왔다하면 악기 통이라 하고

겨울옷 벗었구나 하면 지퍼도 없는 침낭 이라는데

피톨, 살갗이 굳어 생긴 구멍은 어웅했단 말이지

 

가장귀에서 너 댓 뼘, 옹이에서 예닐곱 뼘에

박박 비벼대는 수리성 미-에-엑

 

스쿠터에 실린 용문각 배달통이 덜컹

 

고개식당 개 줄에 묶인 것

울대에 백정의 걸사표(乞師表)라도 걸린 모양

목에서 피리 소리 나는 날

 

* 백정(신라 진평왕)은 고구려를 치기 위해 수나라에 군사를 청하는 걸사표(乞師表)를 보냈다.

 

 


 

류현승 시인

1964년 서울 출생. 2006년 계간《시안》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토우와 낡은 시계』(혜화당, 2009)가 있음. 인천문화 재단(다년간 -지정) 문학창작기금 수혜, 도공, 현재 도예공방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