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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성신 시인 / 에어캡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0.

김성신 시인 / 에어캡

 

 

꿈이 도형으로 떠다녀요

 

그려 볼까요, 그림으로 날아올라볼까요

얼굴을 떼어내 마루에 액자처럼 걸어요

처음 거울을 봤을 때처럼 낯설군요

거울과 얼굴이 분연히 일어나 소리치는 골목

말을 버린 눈이 제 몸에 마르는 눈물을 보아요숨죽였던,

흰 대문 밀고 들어서면

여전히 나팔꽃들이 담을 타고 오를까요

 

지나가던 소나기가 다시 장마 길을 내고팥배나무가 긴 팔로 공중을 들어 올리면섧게 울어보던 감촉은 되살아날 수 있을까요

어둠의 호각 소리, 낯선 것과 낯익은 것들을 호명하면

숨길 게 있다는 건 드러날 게 있다는 것

우리는 매일 바닥을 통해 올라오는 습한 것들에 익숙하죠 난간 위에 걸터앉은 촘촘하게 짜인 어둠과 빛에 걸린 입술각각 다른 무늬의 구름이 조금씩 서로를 삼키기도 하죠

 

의심은 죽음을 몰라 거울은 뒤꿈치를 들고

숲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들을 무시로 던지며

담담한 나의 입술만 되비쳤죠꿈자리가 뒤숭숭해진 당신의 얼굴은 그림자의 덫

 

안녕, 나는 이곳에서 비로소 자유로워 빵 한 조각을 다시 뜯으며 성벽을 넘죠

 

잘 부스러지기 쉬운 살을 목에 두고

언짢은 생각을 차곡차곡 짓누르면

어둡고 외진 모퉁이가 부드럽게 꽃봉오리로 피어나죠

 

하나의 방을 터뜨리자 겨울이 왔고

또 하나의 방을 터뜨리자 상처의 진물이 흘렀지요

 

떠다니는 목소리, 흘러 다니는 뒷그림자

 

밖은 오래 캄캄하고

그 안은 도무지 따듯해

 

태어날 걱정은 안 할래요, 다시는

 

웹진 『시인광장』 2022년 4월호 발표​

 

 


 

 

김성신 시인 / 윤장대(輪藏臺)

 

 

삼월 삼짇날은 윤장대*를 돌리는 날

풍경소리 곱발 세우고

산자락은 그늘을 등지고 좌정한다

 

108배 올리던 법당에서

굽은 허리와 무릎 뼈 석탑처럼 일으켜 세우고

윤장대 돌리는 어머니의 마음에는

묵은 발원이 한 각씩 깊어진다

 

상현달 달무리 지는 밤

아이의 울음소리 희미하게 살아나고

안간힘을 토해내던 흑백의 한 생

몸속 경(經)이 된 통증을

한 올 한 올 부풀리니

저만큼 솔바람에 가슴 쓸리기도 해

 

앞뒤 없는 회한과 갈망은

두 손 맞잡고

배웅하듯

한 곳을 바라보니

이마 위로 맺힌 땀방울

눈물의 동의인양 하염없이 흐른다

 

더 두툼해질 법문의 책장에

줄 맞추어 반듯하게 들어가 있을

어머니의 비워낸 몸을

나는 가만히 부축하여본다.

 

-2017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시

 

 


 

김성신 시인

전남 장흥 출생. 원광대 한문교육학과 졸업. 광주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2017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가 당선되어 등단. 2016년 생명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