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 시인 / 채송화
커다란 가방이 온다 가방에 매달린 아이가 해맑게 웃는다
나이는 열다섯 키는 다섯 살 얼굴은 영글었지만 키는 자라지 않았다
집요한 시선 어디서나 끈질겨도 늘 웃음을 보낸다
양지바른 곳에서 자란 아이 얼굴에는 그늘 한 점 없다
걸음이 느려도 발길에 눌려도 세상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는다
손영 시인 / 유리의 하소연
샤워 끝낸 투명한 내 피부 좀 보세요 구석구석 칫솔질로 반짝이는 치마를 들어내며 말했어요 이걸 보세요 나는 아무것도 감춘 것 없이 모두 보며 주잖아요 사람들은 숨김없이 다 드러내는 내가 솔직하다며 좋아했어요
어깨너머로 풀밭과 패랭이꽃이 보이네요 페르시안 고양이가 내 결에 앉더라구요 하얀 털을 만지려는 순간 손등을 할퀴네요 앙칼진 성깔에 놀라 몇 발자국 물러났어요 다시 쓰다듬으니 보드라운 털이 뱀처럼 서늘했어요
그날은 약속시간에 쫓긴 그녀가 헐떡거리며 뛰어왔어요 내가 미처 말릴 사이도 없이 곧장 내 품으로 뛰어 들더니 갑자기 얼굴을 감싸네요 코뼈까지 얼얼한가 봐요 넘어져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네요 무안해서 잠깐 은행나무 가로수 뒤로 숨고 싶었지만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서 있었어요
환하게 다 보여주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가 떠난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네요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것만 보고 왜 속에 든 투명한 뼈대는 보지 못하는 걸까요 졸고 있는 눈을 닫고 한번 쯤 손끝으로 미세하게 나를 읽어주세요 상처 입은 그녀가 내 어깨에 기대어 울먹이는 소릴 듣고 있으면 나는 정말 난감해져요
- <다시올문학> 2018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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