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종훈 시인 / 휴거
휴 거 라고 발음하는 동안 두 번의 지우개질로 쌓여 있던 거짓말 한쪽을 밀어낸다 반음계 낮은 날숨이 젠가 마냥 살며시 빠져나올 때 흔들리는 구름들에게서 여러 개의 비가 빠진다
거꾸로 매달린 철봉들이 자주 말했다 닳은 자국의 간격이 중요한가요 닳은 것은 사라지는 건가요 변한 건가요 불규칙한 보폭은 당신의 늦은 대답하고 연관이 깊지요
운동장에 미련이 없는 것들은 하교했다 그즈음 게시판에 던졌던 찰흙들이 떨어졌다 깊이 박힌 죄의 지문들이었다 쉬지 않고 조잘대며 주물주물 반복적인 오답 주위엔 닳은 지우개와 희미해진 날짜가 들림 받았다
굳게 박힌 구름사다리 멀리 희미하게 박힌 무지개는 예표였다 흙먼지는 끝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다시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먼지만 일으킨다는 것을 속이 보이지 않는 검은 봉지가 앞구르기를 하며 말했다 납작해지며 휴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영혼이 빠져나간 거라고
나타난 지 사라진 지 꽤 됐다고 환청 같은 바람이었다 공중에 날아가는 뒷모습은 둥그렇게 변형된 봉지였다
웹진 『시인광장』 2022년 4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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