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비 시인 / 꿈의 규칙
뇌에서 자라나는 묵음의 혀 불러내 어제의 문을 열고 내일을 더듬을 때 깊은 잠 태엽을 풀고 규칙을 통과한다
입구엔 누워서도 걸어가는 문이 있다 꿈이란 버석한 흙 또는 나뭇등걸 세상의 모두 이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
규칙 없는 규칙으로 꿈길은 흘러간다 우주의 암흑을 지나 백 년 후 꽃 피우고 침대맡 구름을 띄워 아침 해를 데려온다
시공을 푸는 열쇠는 알람 소리뿐일까 미래와 과거 현실 뒤섞인 마블링 사는 건 꿈에서 보낸 뜯지 않은 꽃 편지
김나비 시인 / 시시詩詩한 새벽
그대가 다녀간 행간 아픈 싹이 돋는다 비 오는 내 눈 속에 거미가 내려온 걸까 공막 속 핏발선 줄에 빗방울이 걸려 있다
명치에 쌓이는 빗소리를 닦아 내며 그대를 불러내어 종이에 가둔다 초침은 째깍거리며 어둔 밤을 가위질한다
썩지 않는 기다림은 끝날 수 있을까 비의 창살을 뚫고 날아가는 당신 모습 도시의 엉킨 발소리 밤을 넘어 행을 지운다
그대를 삼켜버린 길을 찾아 떠도는 슬픔 그대의 항아리에 피도 살도 다 풀어놓고 하얗게 녹아내린 채 흔적 없이 남고 싶다
김나비 시인 / 혼인 비행
차갑게 타는 불을 눈으로 매만질 때 네온사인 불빛들이 노점상 위로 떠다닌다 도시는 반딧불처럼 빛을 흔들어 밤을 깨운다
찬 빛에 가슴 데면 사랑이 깨어날까 심장이 새까맣게 타버린 혼인 비행 청년은 길에 쓰러져 죽음의 빛을 켠다
단속반에 내몰려서 입원한 응급실에 피 묻은 흰 붕대를 말없이 지키는 여자 조각난 눈빛 한 토막 화력이 단단하다
빛의 꼭지 자로 그으면 심박 그래프 춤을 출까 혼인이 끝난 숲에 그래프가 춤 멈추고 숨 놓은 밤의 손가락 가늘게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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