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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문숙 시인 / 젖은 부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1.

문숙 시인 / 젖은 부처

 

 

봉정사에 가면

수몰지구에서 건져 올렸다는 여래석좌상이 있는데요

물속에서 오래도록 미끄러운 시간을 살다와

눈 먹먹 코 먹먹 입 먹먹

부처 반 중생 반 어벙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돌덩이 하나 무명을 버려 부처가 되고

부처를 버려 중생이 되는 시간을 살았는데요

부처도 중생도 다 버리겠다고 승속을 넘나들었는데요

지금은 봉정사 뒷마당에 좌대도 없이 몸 낮추고 앉아

비 오면 비 맞고 눈 오면 눈 맞으며

주야장천 잘 죽여라 하고 있습니다

 

 


 

 

문숙 시인 / 업보

 

 

개구리가 잠자리를 잡아먹고 있다

봄날에

잠자리 애벌레가 올챙이를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전생에

저들은 분명 부부였을 것이다

 

<예컨대 노박덩굴>(2020. 12. 고요아침) 중에서

 

 


 

문숙 시인

1961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2000년 《자유문학》을 통해 등단. 2005년「서울문화재단」 신진작가 지원금을 수혜. 시집으로 『단추』(천년의시작, 2006), 『기울어짐에 대하여』(애지, 2013)가 있음.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과 『불교문예』 편집장 역임.